공선으로 투묘 대기하는 선박들
어제 우리가 닻을 내리고 얼마 안 지나 우리나라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인 현대 프리덤호가 본선 뒤쪽에 바짝 붙다시피 가까운 거리로 와서 투묘를 헸다. 바로 옆자리의 투묘지를 배정받아 투묘를 하고 있는 거다.
혹시 너무 가까이 투묘해서 급한 조류나 풍압에 의해 접촉 사고라도 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언제 출항하느냐고 슬쩍 물으니 내일 오후에 출항하는데 목적 항은 중국의 링보항이란다.
그곳 도착에 시간을 맞추려고 기다리는 거라는 데, 그들이 대만에서 출항 후 이어서 직접 중국에 입항하는 것이 금지된 사항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고 어떻게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지지만 그걸 물어보진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관례를 이미 중국/대만 모두 철폐시켜 직항으로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하여간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곧 떠나는 예정이라니 더 이상 가까이 투묘한 것에 대해 불평을 말하지 않고, 컨테이너선이 차항을 가는데 빈 배로 가며 도착 시간까지 맞추기 위해 투묘하고 이틀이나 기다렸다가 간다는 사실에 관심이 옮겨갔다. 그 배 역시 우리 배나 마찬가지로 해운 시황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느라고 그런 것일 거라는 짐작이 들어서기에 슬그머니 꼬집어 물어보았다.
그런데 대답이 꼭 그런 것은 아니라 해서 좀 풀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주위에 O O C L의 컨테이너선도 한 척 빈 배로 투묘 대기 중인 걸 보며 시황 악화로 인해 계선하는 선박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아주 없애 버리기지 못하며 본선의 형편에 쓴 입맛을 다셔본다.
하룻밤을 자고 난 후 오후 세시쯤 되었을 때, 현대 프리덤호는 이야기하던 대로 닻을 감아서 출항하고 있다.
저 정도 크기의 컨테이너선이라면 라이너(정기선) 선박인데 이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중국의 링보로 간다니 좀 이상한 일이라고 다시금 갸우뚱하면서도 떠나는 그 배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마음 한 켠에는 벌써 우리 배는 언제쯤 이면 저렇게 떠날 수 있을까? 고대하는 마음 헛헛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