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묘 대기로 차항 결정을 기다리다.
지난 16일 도착하여 외항에서 20일까지 기다렸고, 그 후 부두에서의 양하 작업을 위해 20일에 접안하여 25일 새벽 작업이 완료되면서 아침에 출항했으니 부두에만 닷새를 머무른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출항한 우리 배 앞에 기다리고 있는 스케줄은 딱히 정해진 예정이 없어, 목적항이 확정될 때까지 투묘하거나 드리프팅하며 기다리라는 짤막한 용선주로 부터의 지시 이멜뿐이다.
닻을 내리고 기다리라는 이야기대로 우선 항만당국에 외항에 투묘하고 기다릴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주기를 요청하니 선선히 투묘할 자리를 알려준다.
막상 기다릴 곳을 지정해주니 반갑고 안심되는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그곳을 찾아 들어가서 닻을 내리고 앞으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기간을 하염없이 보내야 하는 상황에 갑자기 마음이 서글퍼진다.
그동안 좋았던 해운 시황에 신나게 운항하던 시절은 어느새 꿈 같이 지나가고 턱없이 떨어진 용선료로 인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닻을 내려주고 기다리는 게 그나마 손해를 적게 하는 계선점(Laying of point) 이하로 떨어진 용선료(차터 베이스 Charter base)가 아쉬울 뿐이다.
용선주는 가오슝 외항에 닻을 내리거나 안되면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 서쪽 해상에서 드리프팅으로 기다리라는 말로만 연락을 해오고 있다.
안개가 뿌옇게 끼인 부두를 뒷걸음질로 벗어나서 항구의 입구 방파제 사이로 들어서니 외항 방파제를 벗어나기도 전에 도선사는 내린다고 한다.
그들을 내려주고 나서 다시 항만당국을 불러 우리가 닻을 내릴 수 있는 장소를 알려달라고 요청해 본다. 기다리라는 대답을 하더니 잠시 후 위치를 불러 준다.
항로에서 오른쪽으로 벗어나서 3마일도 안 되는 장소를 투묘지로 지정해 준 것이다.
차항이 아직도 나서지 않아 부득불 이곳에 머물러 기다렸다가 목적항이 생기면 떠난다는 작정으로 용선주가 택한 조치이니 우리도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얼마나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닻을 내리기 위해 Full/Astern엔진을 쓴 여파로 선미부에서부터 오기 시작한 스크루 와류에 의한 거품이 섞이며 물빛이 에메랄드 빛으로 변하고 있다.
사진:닻을 내려주기 위해 사용한 후진 프로펠러가 내는 와류에 의해 흰 거품이 든 해면은
밝은 에메랄드 빛을 뽐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