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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 EVER SALUTE

by 전희태
EVER_SALUTE1.jpg MV. EVER SALUTE



뿌옇게 칠해 준 도화지 속 애매함 같은 옅은 안개로 수평선마저 제대로 구별 짓지 못하는 속을 뚫고 발 빠른 컨테이너선 한 척이 3 마일 너머 우리 배의 옆자리로 다가와 닻을 내린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채의 마치 보석함을 연상시키는 컨테이너를 실은 그 배는 이곳 항구에 자신들의 회사 전용 부두도 갖추고 있는 선사인 EVER GREEN 사의 정기 컨테이너 선인데 기다리는 장소로 들어서고 있다.


종종 FULL & DOWN(만선) 상태를 이룬 모습으로 나타나는 컨테이너선을 만나게 될 때마다, 나는 마치 아끼는 보석함을 보며 은근한 즐거움을 느끼는 여심과 같은 마음이 되는 스스로를 보면서 웃곤 한다.

사실 컨테이너가 싣고 다니는 화물은 갖가지의 고가 화물인 경우가 많기에 보석함을 대하는 것 같은 내 마음 가짐이 그렇게 무관한 상상만은 아니리라.


환한 맑은 날씨였다면 그 색채가 더욱 아름다웠겠지만 지금 같은 좀 흐릿한 시야에 나타나니 그런 밝은 아름다움은 감해진 느낌이 들지만, 그런 밝음 대신 그 반감된 투명한 흐릿함이 어떤 면에서는 은은히 배어 나오는 색채의 멋을 풍겨 주기도 한다.


MV. EVER SALUTE. 그 배의 이름이다. 아마도 접안할 부두에 선착한 자매선이라도 작업 중에 있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닻을 내리는 거겠지만, 빈 배로 기다리는 컨테이너선도 있는 마당에, 풀어 줄 짐을 잔뜩 싣고 대기하는 그 배의 상황은 공선(空船) 대기(待期) 보다야 훨씬 나은 상황이겠지.


경기가 활성화된 해운 시황이라면 만선 한 컨테이너 선이 항구에 도착하여 즉시 접안을 못하는 일은 없는 게 그 들 정기선의 타임 스케줄인데, 이렇게 기다렸다 입항한다는 일 자체는 해운시황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로 그만큼 나쁘다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닻을 내리고 있는 그 배를 지켜보며 그런 내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보며, 아직도 기다림 속에 있는 우리 배의 실상이 더욱 우울한 마음 되어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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