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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두리 호와의 인연기

18. 비상 주부식 선적 요청

by 전희태
090424 013.jpg 비 내리는 치타공의 외항에서


18. 비상 주부식 선적 요청


부식을 보급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던 대리점에서 세관의 허가가 안 나와해 줄 수 없다는 쪽으로 선회하며 이곳에서 2주일분의 부식을 선적시키려던 회사의 방침이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나는 처음부터 현재의 남아 있는 배의 부식으로 26~27일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까 그 안에 원래 계약대로 매선 인도의 일만 성사시키면 된다는 데 무게를 가지고 별로 부식 모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계약의 이행이 왜 인지 자꾸 늘어져서 이제는 우리의 뜻을 보이기 위해서도 부식 공급을 받아 전투태세(?)를 완비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려던 참인데 대리점의 배신에 절로 맘이 상해 버린다.

대리점의 배신이라 함은 본선을 두고 선주와 바이어 둘 중에 어느 쪽에 더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어야 하는가에 있어, 그들은 당연히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 선주 측이 아닌 그 상대방인 본선을 싸게 인수하려는 바이어 측의 편을 들어주는 행동으로 나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대리점 면허가 취소된다는 식의 이야기로 너스레를 떨며 변명하는 대리점은 어절 수 없이 관 앞에 서면 꼼짝 못 하는 후진국의 민초 모습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이제 대리점마저 우리 편을 떠나 자신의 살길을 찾아가는 양상이니 이곳의 날씨만큼이나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녁 늦은 시간에 부산지점의 O차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곳에 회사가 거래했던 실적이 있는 선식 회사를 소개하니 그곳을 통해 직접 부식 구입을 하면 되겠다는 이야기이다.


본사와의 공조를 위해 담당자인 O대리를 찾아 이야기하니 자신은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O차장이 이야기했더니 자신의 윗분들과 이야기가 된 사항인 듯싶으니 그대로 하시지요 한다.

그 현지 선식에서도 이미 연락이 와 있기에 우선 가격을 묻고 언제 선적 가능한지 묻는 이멜을 넣었다.

대답이 왔다. 이멜을 잘 받았으며 우리의 위치가 너무 항계 밖에서 멀고 날씨도 안 좋아 선적 일자는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해온다.


그런 답전 이멜을 받아 들 때만 해도 바람이 25~30노트를 넘나들고 있어 별로 바람소리를 못 느끼던 이 배에서 조차 윙윙 대는 소리가 감지되어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써늘하게 식어가는 기분을 죽이느라 가슴을 쓸어내린다.


밤새 침대 위에서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깨인 잠을 설치기까지 하는데, 귓속을 파고드는 바람소리는 깨어나려는 신경 줄을 마구 자극해 댄다. 바람은 아직도 그대로 인 것이다.

새벽이 되니 좀 나아진 듯 하지만 그래도 못 미더워 일어나 커튼을 들치며 밖을 내다본다. 날씨가 뿌연 것은 여전하지만 확실히 바람이 점점 자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어선다. 얼른 브리지로 전화를 걸어 본다.

-수고 많네, 지금 기상 상태는 어떤가?

-네, 바람의 세기가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일항사의 대답에 우선 안도하며

-기압은 어떤가?

-별 변화가 없이 1003을 유지하고 있네요.

한다.

-그래? 좋아지는 징조로군…… 수고해라.


그동안 기상 상황을 물을 때마다 별로 달라진 게 없이 여전하다는 대답에 은근히 짜증이 나있던 중인데 참 오랜만에 듣고 싶은 대답을 들으니 따듯한 침이 절로 입안에 고여 든다.


전화를 끊는 손이 한결 날렵해지고 마음은 그에 비례하여 편안해지니 몸의 굴신도 부드러워진다.

바람이 점점 잦아든다는 별로 특출하지도 못한, 이 작은 일 안에 열망이 있고 이루어지는 기쁨이 있어 행복도 우러나고 부드러운 화합까지 팽배해져 결국은 배 전체의 분위기를 온유하게 만들어 주는 기본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부식을 실을 수 있는 날씨로 회복되는 것이라 믿으며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좋은 일은 하루 한 시간이라도 빨리 두리의 매선 인도가 결정되어 바이어에게 무사히 넘겨주는 일이 성사되는 것이다.


이미 장부상에는 없는 부식이지만 아직 27일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까 그 안에 매도가 완전히 성사되면 부식을 사지 않고도 일이 끝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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