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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버린 Los Angeles Express호

by 전희태
LA_Express1.jpg 떠나가고 있는 Los Angeles Express호



컨테이너선 로스앤젤레스 익스프레스 호의 선미 프로펠러가 있는 부위가 햇빛을 받아 유난히도 반짝이는 빛을 한 번씩 발하고 있다.

뿌연 안개가 덮인 대기로 인해 멀리 있는 사물이 반투명하게 보여 그 반짝거림이 유난히도 마음을 끌게 하여 사진을 한 장 찍어 본다.


마침 엔진을 잠깐 썼는지 하얀 띠를 띠워 보여서 쌍안경을 들어 보니 스크루는 돌아가지 않고 있지만 좀 전에 돌린 게 맞는지 거품을 동반한 흰색의 해면을 선미부에 흩여 보여주고 있다.


그냥 무심한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왔다가 선원 명부를 다운로드하여야 할 일이 생겨 다시 브리지를 찾았는데 그 배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져 있다. 당직 중이던 3 항사가 보고를 한다.


-선장님 Hapag Lloyd의 컨테이너가 떠났습니다.

-그래? 언제 떠났는데?

-아까 아홉 시 반쯤 되어 떠났습니다.

-어디로 간대?

-예, 부산으로 간다고 하던데요.

-으음 부산? 빈 컨테니어라도 실으러 가려는 건가?….

혼자 중얼거리며 그 배가 있던 자리를 처다 본다.


마치 든든한 바람막이처럼 우리 배를 북서쪽에서 쳐오는 파도 막이 라도 해주듯 머물러 있던 그 배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는 푸른 바다가 10노트 이하로 불어오는 바람에 낮은 파도를 일렁이며 조용히 있다.

이제는 어지간한 이별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만큼의 관록이 붙어 있을만한데도 다시금 친근한 친구라도 멀리 떠나보낸 것 같은 씁쓸한 마음이 찾아든다.

이제 가오슝 외항에 장기간 기다리며 남아 있는 배는 벌커선들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배가 그중 제일 큰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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