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또다시 바뀐 임시 묘박지
17.또다시 바뀐 임시 묘박지
어떠한 깊은 내막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도착해도 항계 내로 진입하지 말고 항계 밖에서 드리프팅(표류) 하라는 지시에 의해 내가 선택한 장소는 치타공 묘박지까지는 77마일 더 가야 하는 떨어진 외해에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면서 표류를 시작하기로 작정을 한다.
수심이 본선이 운신하기에 힘들지 않은 깊이를 가지고 있고 육지로부터 30마일 이상 떨어져 있어 도둑의 침입이 용이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으로 선택한 장소이다.
원래는 치타공을 향한 마지막 접근 변침 점으로 이곳을 지나면 수심이 점점 얕아지며 곳곳에 천소와 항해 장애물이 있기에 더 이상 접근하기가 용이치 않다는 판단을 내려 결정했던 것이다.
형세가 변해 치타공에 빨리 도착해야 하는 결정이 나더라도 최소한 8시간 정도는 걸려야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단점이 그나마 표류를 하는 결정적인 위의 이유를 내포하면 장점화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녁 무렵 그곳에 도착이 세 시간이나 빨라져서 22시면 도착될 것으로 여기어 드리프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드리프팅하지 말고 계속 항진하여 항계와 더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라는 지시에 새로운 장소를 찾아본다. 치타공 항계 밖 15마일 정도 되는 곳으로 정한다.
그러나 그곳을 가기 위해 계속 달린다면 너무 이른 어둠의 시간이 되겠기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를 잠시 뒤로 돌리기로 한다.
회사와 대리점에는 그렇게 시간을 맞춘 그 위치에의 이티 에이를 다시 알려 주니 대리점에서는 그곳이 양호한 묘박지라며 도착해서 투묘해도 된다는 정보를 준다.
회사도 본선의 안전을 위해 택한 내 의견을 존중하여 그곳에서 투묘 대기하도록 일단은 허가해 주었다.
이제부터는 연료 유를 최소로 소모하여야 하는 명제가 중요한 상황인데 배를 뒤로 돌려 시간을 맞춰야 하는 아이러니에 잠깐 우울해진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니 그냥 밀고 나가기로 한다.
또한 철저한 해적 침입 방지 당직을 실시하여 인명과 선체 안전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도록 미리 선원들에게 교육을 시킨다. 이 모든 일을 무사히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얼마 전에 불어왔던 동종의 싸이클론이 또다시 이곳을 찾아오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 일만큼은 신에게 비는 마음 간절하다.
현재 모자라고 있는 주부식은 이곳에서 터그보트를 통해서 구입이 가능하다는 회사의 연락을 받고 있어 걱정이 줄었지만, 혹시 기상악화로 인해 배를 움직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결국 연료유의 모자람을 유발하는 큰일이 되기에 은근히 날씨 걱정이 드는 것이다.
이 밤에 최선을 다한 당직으로 명일 아침에 뿌듯한 보람찬 결과를 안으며 본선을 바이어에게 인도해주는 작업이 무탈하게 끝나 지기를 바라는 마음,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원들의 바람이다.
예정했던 아침 아홉 시경 찾아간 두 번째 목표지점에 무사히 도착하여 도착 및 투묘 보고를 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