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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두리 호와의 인연기

27. 두리 호와의 영원한 이별

by 전희태

27. 두리 호와의 영원한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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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두리가 가질 앞으로의 석 달을 보여주듯 앙상하게 해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선착선의 모습




두리 호는 1980년 5월 18일 일본 히타치 조선소에서 YARD NUMBER 4.642 로 KEEL LAID 하며 태어났고, 그 해 10월 5일 물 위에 띠워진 후, 마지막 의장 작업 및 선박 으로서의 단장을 마무리하며 1981년 1월 29일 선주에게 인계되어 M/V WORLD DULCE라는 첫 이름을 가진 CAPESIZE 의 BULK 선으로서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화려한 생애를 시작했었다.


두리는 태어나 지금까지

선명, 선적지 기간 선급

M/V WORLD DULCE (PANAMA) 1987년 06/08까지 L.R

M/V DALTON (U.K) 1988년 07/24까지 L.R

M/V NAVALIS (HONG KONG, CHINA) 1997년 10/23까지 L.R

M/V CAPE OF GOOD HOPE (MALTA) 2004년 11/16까지 L.R

M/V GREAT GALAXY (KOREA) 2008년 10/04까지 K.R

M/V DURI (KOREA) 2009년- 현재까지 K.R


이렇게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개명해가며 나라가 다른 선주들과 살아왔지만, 그런 그녀의 생애에서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는 7925948이란 IMO NO.(번호) 뿐이다.


우리들에게 있는 주민등록 번호만큼이나 중요한 이 인식번호는 관련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배 이름에 앞서 입력해도 이력이 줄줄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는 번호인 것이다.


지난 4주일 여를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언제 바이어에게 배를 인계해주고 집으로 돌아갈까를 걱정하면서도 두리와의 마지막 인연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그 안달 나는 나날을 힘겹지만 참아가며 지내게 했다.

당장 어느 때라도 두리를 넘겨줄 준비를 다하고 있었지만 왜 그리 꼬이는 일이 많았는지 계속 넘어가던 인도 일자의 늘어짐에 낙담하든 내 마음을 추슬러가며 다잡아 보던 내 구호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사고 없이 배를 넘겨주도록 하자- 였다.


날씨도 괜찮아 보이는데 좀 적당히 편하게 넘어가도 될 텐데 왜 그토록 엄격하게 항해당직으로 고생(?)시키냐는 식으로 의문을 품는 선원들의 불만이 짐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의 해이함이 바로 사고의 근원이 됨을 강조하며, 그들도 내 마음도 함께 달래주곤 했었다.


마지막 날 밤까지 <야간 지시록>을 썼고 또 당직사관들의 서명을 받아 두었지만, 오늘 아침 그 당직 책자는 세상에서 고의로 없애 버리려고 불살라 버린 폐기 서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의 실마리들을 최소한 책임감을 느끼며 생활하는 상선 사관이라면 알아주기를 바랐었고, 또 이번 동승했던 동료들은 내 그런 바람을 모두 이해했다고 믿고 싶은거다.


그것은 배를 타는 사람들이 일 처리를 할 때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니까….

이번 항차 마지막을 장식할 날도 그렇게 밝아 왔었다.


통상적인 절차였다면 항차가 끝나는 즉시 다시 더해지는 번호와 함께 다음 선적할 화물을 찾아가는 항해로 이어지겠지만 두리의 이번 항차는 그게 그야말로 마지막이 되어 다시는 두리의 몇 항차라는 더해준 숫자의 이어짐이 없이 VOY.003으로 끝이 난 것이다.


미리 감기 시작했던 닻이 다 올라왔다는 선수루 일항사의 보고를 비칭 마스터에게 알려 준 것도 그때였다.

-Slow Ahead Engine.

짤막한 엔진 오더로 며칠간 머물고 있던 치타공의 찰리(C) 정박지를 떠나기 시작했고, 앞으로 두 시간여 달려가면 생애를 마감하기 위한 곳에 도착하게 된다. 문득 너무나 간단하게 진행되고 있는 과정 앞에 그동안 안달하며 기다렸던 일의 성사가 주는 허탈함에 이어서 한 생애의 마감이 주는 허무감이 교차하듯 엄습 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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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두리의 마지막 모습. 정박지에 투묘한 것 같은 모습이지만 앵카 두 개 모두 걷어진 상태로 기관이 저절로 서줄 때까지 전속력으로 들어와 그대로 뻘밭 위에 임의로 좌주(Agrounding)시켜 놓은 상태다. 이곳이 두리가 마지막 해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두리를 떠나 영원히 이별해야 할 마지막 때가 되었다. 한번 더 뒤돌아 보는 심정에 다시금 만감이 교차하면서 착잡한 응어리가 눈가를 찾아드니 환한 날씨가 절로 무색해지고 있다.


한 달여 들었던 정을 떼어내면서, 높다랗게 매달려 버린 좌현 갱웨이(현문 사다리)를 향하는 발걸음에 햇빛은 쨍쨍 비치지만 왠지 서늘한 허무감이 가슴으로 치밀어 든다.


그렇게 두리를 떠나려고 갱웨이에 올라서고 보니 그 하부가 우리를 실어다 줄 통선과 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더 줄타기를 하고 내려가야 할 줄 사다리를 연결하고 있다.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배 밑이 땅위에 올라가 있어 흘수의 표시는 조고의 높이를 나타내 보이는 형편으로 깡충하니 떠 올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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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힘겹게 줄사다리를 타고 마지막 철수를 하며 대롱대롱 매달린 허공에서 까마득 하니 내려다 보이던 통선위로 뒤뚱 이면서도 무사히 내렸다.


겨우 안착한 마구 흔들리는 통선에서 뻐근해진 팔을 주무르며 세 명이란 정원을 채우려 계속 내려오는 사람을 기다리며 사방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 본다.


이미 땅 위(뻘밭)에 배바닥(보톰)을 대고 서버렸기에, 그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몸체 위에 덕지덕지 붙어 숨겨져 있던 조가비들이 부끄러운 듯이 선체 하부를 가리며 햇볕을 쏘이고 있다.


목을 젖혀야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게 높아진 브리지는 어느새 선체에 가려져 시야에서 사라졌고 주갑판 현문 부근에서 하선 손가방들을 줄에 매어 내려주고 있는 곧이어 하선해야 할 선원들의 모습도 유난히 작아 보인다.


곡예보다 더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출하며 갱웨이 아래로 덧붙여 내려준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선 통선은 선수와 선미가 껑충하니 높아 보이는 마치 베니스의 곤돌라를 닮아있고 사공(통선 선장)이 삿대로 너울을 조절하며 기다리고 있다.



-두리야! 잘 있어라~ 아니 잘 가거라.

이윽고 떠나는 통선 위에서 가만히 이안으로 속삭여 본다. 기껏해야 한 달 정도 같이 탄 인연이지만 이 순간 느껴지는 감회는 그 어느 배를 탔던 때보다도 유별스레 감정이 널뛰는 모습 되어 내 마음에서 소용도리를 이루고 있다.


꼼짝달싹 할 수 없이 멈춰 선 두리는 제 생애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가졌던, 희망봉도 돌아보고, 대 은하수 에로 들어서는 길목도 빠뜨리지 않고 찾아가기라도 하려는지... 묵묵부답인 채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몸체를 모두 스쳐 지나 선수를 뒤로할 때쯤 뒤돌아 본 두리는 꼿꼿하게 늘어뜨려준 닻줄과 함께 껑충하니 떠 오른 모습이 너무나 추워 보였다. 나는 따가운 무더위에 절로 땀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여기는 배의 도살장도 되는 곳이란 새삼스런 인식이 서늘하니 떠오르며 흘러나올 듯한 눈물과 땀을 포함해 모든 감정까지 토닥여 주며 두리에게 주었던 모든 시선을 거두었다.





통선이 떠났다. 베니스의 곤돌라 비슷한 건들거리던 모습에 엔진을 걸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통선만큼이나 사공(혼자 타고 있던 통선 선장)의 모습도 건들거리는데, 구관조 같은 발음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흉내 내는 연기를 하며 말을 걸어오고 있다.


-대꾸하거나 말을 꺼내면 괜히 복잡하고 길어지니 모르는 체 묵살하고 있어요.

그의 걸어오는 말에 응대하려는 동승인들을 조용히 말렸다.


그와 말을 받아주게 될 경우 손을 내밀며 무언가를 얻어가려는 귀찮은 행동으로 이어질 게 뻔하므로 취한 내 방어적 생각에서 취한 명령 아닌 명령에 동승한 우리 선원들도 이해한 듯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다.



어느새 통선이 물가에 도착했다. 뻘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려 주는 해변가에 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며 관심을 보이며 우리의 도착을 보고 있다.


좀 검은색 피부에 눈만은 반짝이는 이들은 우리를 쳐다보는 눈길이 움직이지도 않고 고정하고 있어 그 눈길에 잡힌 우리가 오히려 구경꾼 앞에 놓인 피사체 같은 멈칫하는 마음이 된다.


얼마 전엔가 흘낏하니 읽어 보았던 어느 외국인 기자의 이곳 르포기사를 생각해 내며 그들의 모습을 사진 찍고 싶었던 마음과 아니 그러면 안되지 하는 마음의 갈등을 그냥 스쳐 지나는 눈길로 기억에 넣어주리라 정하여 카메라의 눈길은 거두기로 했다, 아직 어려 보이는 바로 앞에서 움직이고 있던 인부의 흑백이 명료한 투명해 보이는 눈길이 그냥 카메라의 렌즈를 들이대기에는 너무 애처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대리 점원이 나타나서 기다리고 있는 통차로 안내해준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곁눈질로 살펴보니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란 로프를 함께 들고 무언가를 끌고 있던 모습이다.


오래된 예전에 보았던 이집트 피라미드 관련 영화가 불현듯 떠 오른다. 수많은 노예들이 줄을 서서 쇠사슬이던가 하여간 로프를 끌어당기어 무거운 돌을 옮기던 장면이었는데....


그 줄이 이어진 끝 쪽, 바다 쪽을 살피니 그 줄은 작은 바지선에 묶여 있고 그 바지 위에는 조각 난 철판들이 수북이 올려져 쌓여있다.


이들은 물 위에 떠있는 배(폐선)를 해체하여 나온 조각들을 바지선 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크레인 같은 기구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 이 곳에서, 사람들의 힘만으로 이 모든 일을 하여 육지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세계의 폐선장이랄 수 있는 치타공 폐선장의 기본적인 파워는 이렇듯 믿을 수 없지만 인력이 주가 되는 모습이어서 나를 한번 더 놀라게 하였다.


차에 오르기 전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다. 이미 우리에게서 시선을 돌린 인부들이 로프를 당기어 자신들에게 지워진 일을 다시 시작하였고, 두리도 바다 위 한 빈자리를 차지한 것에 만족이라도 한 듯 아직도 발라스트 해수를 뿜어내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귀국할 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 하룻밤 묵어가야 할 숙소-호텔-를 향하고 있는 거다. 바쁘게 지나치는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눈길에 참 익숙한 물건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도로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점들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물건들의 모습이 참으로 눈에 익은 모습인 것이다.


세면기나 변기 등의 도기로 된 물건들이 쌓여 있는 모습도 있고, 어느 상점에는 각종 파이프 류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모두가 배에서 무심하게 만나보았던 물품들이 개별적으로 분해되어 종류별로 분류하여 쌓아놓은 모습이다.

모두 폐선장에서 빠져나온 각종 선용품들이 그 용도에 따라 그렇게 진열되어 있는 것인데 그 거리 전체가 모두 다 그런 모습의 상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너무나 알뜰하게 부위별로 다 준비해두고 있는 폐선의 마지막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윽고 차는 큰 거리로 나섰고 이제 어느 곳-호텔-에 도착했는데 문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일단정지시켜 놓고 차 밑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로 된 검색기를 넣어 조사해 본 후 문 안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여기도 심심찮게 무차별 테러가 자행되는 갈등이 많은 나라임을 새삼 기억해내며 배당받은 방 열쇠를 받아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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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미 해체를 시작한 어느 배에서 작업을 잠깐 쉬며 두리의 도착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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