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응 타기 위해 지구의 반대편을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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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를 폐선장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온 지 벌써 몇 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또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겠냐는 물음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되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단단히 각오하고 일 년은 승선한다고 큰소리쳐가며 지구 반대편에서 나를 기다려 준다는 배를 찾아서 집을 나서기로 했다.
인천 공항까지 배웅 나온 아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귀갓길이 맘에 걸리어 같이 나온 큰애랑 셋이서 공항의 햄버거 가게에 들려 저녁 대용식을 하기로 한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 오면 늘 그런 착잡한 심정이 된다. 아내를 가볍게 안아주고 덩달아 큰애까지 포옹해 준 후 출국장 안으로 들어간다.
21시 05분 출발이라는 시간에 아직도 한 시간 가량 남아있는 20시가 조금 넘어 있는 시간이라서 혼자 좀 무료하게 보내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일찍 집으로 귀가하는 아내를 배려해 보는 내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브라질의 리오그란데(RIO GRANDE)항까지는, 인천에서 상파울루 가는 대한 항공을 타고 상파울루에서 브라질 국내선으로 환승하여 포트 알레그레(PORT ALREGRE)로 가고 다시 한번 더 국내선으로 갈아탄 후 최종 목적지인 리오그란데로 가는 일정이다.
상파울루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탈 때 환승 시간이 짧아 빨리 움직여야 된다는 회사의 충고를 기억하여 발권하는 아가씨에게 도착하면 제일 먼저 내릴 수 있는 좌석을 부탁하여 4D좌석으로 표를 받았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보니 777-200 기종의 항공기로 중간에 LA에 기항하여 네 시간 정도 쉬었다가 다시 가는 비행기라는 걸 개찰할 무렵에야 알게 되었다.
세 좌석이 함께 나란히 붙여진 그런 좌석이 세 줄로 기수 쪽에서 기미 쪽으로 이어진 좌석 배치는 그 사이에 두 개의 통로를 열고 있다.
내 좌석은 이코노믹 좌석의 네 번째 줄로서 왼쪽부터 A, B, C 좌석이 있고 가운데 쪽에 D, E, F가 있어 내 좌석은 C석과 통로를 사이에 둔 좌석이다.
서둘러 먼저 타고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거의 마지막에 들어온 어떤 아주머니가 내가 앉은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머뭇거린다.
무슨 소린가 싶은 호기로 내 자리를 확인하였는데, 부끄럽게도 내가 잠깐 착각하여 F좌석을 내 자리로 알고 앉았던 것이다. 얼른 일어나 옆으로 옮겨 앉으며 고소를 머금는다.
그 아주머니는 대전에 집이 있으며 상파울루에 교민으로 살고 있는 아들, 딸들이 더 늦기 전에 한번 다녀가 보라는 성화에 우선 큰 딸네 집을 찾아간다는 내 또래의 동년배가 되는 분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의 좌석인 4E는 비행기가 떠 오를 때까지 임자를 찾지 못하고 비어 있었다.
그런 행운(?)이 이틀 밤을 옆에서 자면서 첫날밤은 태평양을 건너 LA에 도착했었고, 다음날 밤은 다시 북미 북서부에서 중미를 거쳐 남미의 남동부까지의 비스듬히 날아간 지구 반 바퀴의 항정을 그나마 편하게 지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는 보기에는 크게 다리가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이 편하게 모시겠다는 극성(?)에 기내에 까지 휠체어가 들어와 모시고 나갔다가 다시 휠체어로 들어오는 호사를 LA에서도 하고 나중 상파울루의 항공사 직원들도 그렇게 준비한 채 기다려주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주었던 간식거리의 땅콩 봉지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가 LA 공항 환승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때 부스럭거리며 꺼내더니 먹으라고 내어주던 그녀의 너무 순진해 보이는 마음이 머쓱해지지 않도록 나는 별로 생각이 없었으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덧붙여가며 맛을 음미하듯 받아먹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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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누군가 큰 소리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면세점을 열었으니 이용하실 분은 들어가 보세요.
대기실 안에 있는 닫혀 있던 면세점 문이 열리면서 지금 이용하라는 소개의 말인 데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와 환승을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만을 대상으로 한 상술이다.
악착같아 보이는 형편의 상술에 별로 기분 좋은 마음이 아니라서 아예 무시하기로 한다. 몇몇 사람들이 들어가 보더니 곧 다시 나온다.
그리고 잠시 후 면세점 문은 면세품을 하나도 판매한 실적이 없이 다시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