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타야 할 배를 찾아 서
쪼그리고 앉다시피 한 비행기 좌석 위에서 날짜변경선을 지나게 되어 또다시 28일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런 사실을 알리 없이 그냥 졸음과 잠에 빠져 있다.
하나 평생을 그런 식의 시간 변경 속에 살아온 직업인으로서는 그렇게 시간이 변하여 도착한 LA에서 이번 배를 타러 나오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중에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 C1비자를 신청하고 받아내야 했던 작은 이유를 찾아내 본다.
미국 입국이 아니라 환승을 위해 공항 내에만 머무르다가 다시 떠나려는 승객들에게도 열 손가락 지문을 찍어보라고 요구하는 이민국 직원들을 보며 나도 그런 요구대로 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뺨이라도 맞은 듯한 어딘가 떨떠름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는 심정이다. 지금껏 미국 입국비자 신청을 미적거리고 있던 나의 가냘픈 이유를 들어내 보인 것으로 보인다.
생전 처음 가 보는 상파울루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려면 많지 않은 시간 안에 최대로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회사 담당자의 말을 따르려는 일념으로 일등석 손님이 내리는 뒤를 이어 내려가려고 옆자리에서 꼼짝없이 이틀 밤을 지나게 되었던 아주머니한테도 미리 작별인사를 하였다.
서둘러서 비행기에서 내렸건만 직접 연결 램프 웨이로 나서는 게 아니라 셔틀버스를 타고 입국장으로 들어서는 방식을 쓰고 있어 그렇게 빨리 빠져나온 일이 생색을 못 내고 말았다.
그래도 남 먼저 수화물 찾는 곳에 가서 돌아가기 시작하는 롤러 위로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짐짝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실 떠나기 며칠 전 구입해서 아직까지 제대로 낯을 익히지 못한 상황이라 긴가민가하면서도 당겨지는 마음에 미끄러져 오는 가방을 자세히 살펴본다.
가방의 손잡이에 화물 태그로 휩싸여 있어 분홍색의 손수건으로 잘 묶어 표지를 해준 게 눈에 뜨이지 않았지만 일단 들어 올려서 태그들을 쓸어내며 살펴보니 내 예감이 맞아 내 가방을 잡은 것이다.
기내에서 열심히 작성했던 세관 신고서와 이민국 서류를 여권과 함께 들고 방금 찾은 이삿짐(앞으로 일 년 동안 생활할 짐이 들었으니)을 끌면서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내가 제일 먼저 짐을 찾아 나선 사람이다.
심사대를 통과하여 입국장을 빠져나올 때 작은 명패를 들고 입국자를 맞이하려는 몇 사람을 보았지만, 그들 중 나를 찾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부지런히 국내선 수속 창구를 찾아서 그곳을 빠져나온다.
처음부터 팻말 들고 찾아 줄 사람은 없으니 나 혼자서 국내선 창구를 찾아가 발권받아 환승하는 일을 해결해야 한다던 출국 때 회사 사람들의 알림 사항만을 믿고 행동하느라 그리도 바쁘게 움직인 것이다.
입국장에서 국내선인 TAM 브라질리아 항공의 티켓팅 장소는 옆의 이층에 있었다. 그러나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 몇 번이나 길을 물어가며 다시 이층으로 올라갔다.
널따란 통로 로비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국제선 담당이고 건너편은 국내선 담당이었다.
국내선 쪽을 찾아가 사람이 서 있지 않은 창구 앞에 섰다. 나의 찾아와 섬을 힐끗 쳐다보며 알았을 것 같은데도 주위 동료들과 계속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부산했던 여자 직원은 한참(?) 만에야 나에게 눈길을 준다.
국내선을 상파울루/포트 알레그레, 포트 알레그레/리오그란데의 두 번에 걸친 환승을 하며 목적지를 기야 하는데 같은 항공사이니 연계시켜서 짐을 중간에 찾지 않고 마지막 리오그란데에 가서 찾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계속 무어라 주위의 동료들과 이야기하더니 내 요청이 불가능하다며 포트 알레그레에서 짐을 찾은 후 새로이 다음 비행기표를 또 발권받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같은 항공사의 표이지만 발권 의뢰한 여행사가 다르기 때문에 연계하어 환승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더 포트 알레그레에서 짐을 찾은 후, 최종 목적지인 리오그란데행 티켓을 재차 발권받기로 작정하고 짐을 부쳤다.
투덜거리려는 마음을 스스로 삭여가며 부지런히 7번 게이트를 찾아 나섰다. 그곳에서 포트 알레그레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이다.
어깨에 멘 카메라 가방이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지는 속에 흐르는 땀을 슬금슬금 닦아가며 찾아간 7번 게이트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펴본다.
전광판 안내에 내가 탈 비행기의 상황이 떠 오른다. 12시 40분에 떠날 것이라던 비행기의 출발 시간이 12시 30분으로 단축된 상태로 알려지고 있어 좀은 의아한 생각을 하지만 그 시간 안에 이미 도착해 있으면서 다음으로 넘어가니 안도하며 기다린다.
슬슬 개찰할 시간이 다가오는지 못 알아들을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어나 줄을 형성한다. 나도 적당한 기회를 찾아 줄 중간쯤에 줄 서기를 한다.
그때 깨끗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젊은이가 팻말을 들고 누군가를 찾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얼른 팻말을 보니 내가 탈 배와 내 이름이 함께 적힌 팻말이다. 나를 찾아온 사람이다.
두 장의 서명을 받아야 할 서류가 있으니 그걸 해결하러 사무실로 갔다가 비행기를 타야 한단다.
다시 한 사람 더 늘어난 그들은 부지런히 나를 데리고 보안 검색대를 다시 빠져나와 아래층 국제선 입국장으로 가서 입국심사를 다시 받을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브라질 입국 시 대리점(중개인) 원이 마중 나와서 그런 수속을 한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경찰의 외사과 비슷한 곳으로 여겨진다
.
이제 비행기 뜰 시간이 12분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나타나더라도 7번 게이트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할 거란 다급함을 숨 고르기로 다스리고 있었건만 안으로 들어간 그 중개인 청년은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이번 비행기는 놓치게 될 것이란 예감이 커졌다.
비행기 안에서 2분 정도 빠르게 맞춰 놓았던 시계 침이 12시 25분을 가리킬 때쯤 그 청년이 나타난다. 우리는 말없이 열심히 걸어 7번 게이트를 향한다. 그러나 정시쯤에 도착한 그 게이트는 이미 잠가진 채였고 비행기도 이미 자리를 움직여 보이질 않는다.
짐만이 내 먼저 포트 알레그레로 향한 셈이다. 그곳에서 한참을 기다려 같은 회사의 다음 비행기표로 재 발권받아 준 후 이번에는 1415시까지 1번 게이트로 가서 탑승하라는 말을 하고 떠나려는 그를 불러 세운다.
그렇게 되면 포트 알레그레에서 미리 예약했던 비행기도 놓치게 되니 그것도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내 말에 그도 수긍하고 미안하다며 이번에는 포트 알레그레/리오그란데 간의 비행기 시간표를 알아보더니 밤 9시에 있는 타 항공사의 비행기가 있다면서 새로 발권받아 보내주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혼자,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 팽개쳐 저 버려진 듯한 심정에 그 친구를 놓치면 미아라도 될 듯한 기분에 열심히 그가 발권창구에 가서 이야기하고 또 기다리는 동안 나도 그 주위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상대하던 창구의 아가씨가 자리를 뜬 사이 그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힘들고 피곤해 보이니 어디 의자에 가서 좀 앉아 쉬면서 기다리라는 이야기를 한다.
연 이틀에 걸쳐 지구 반 바퀴를 도는 비행기 여행에 지치기도 했고, 또 땀이 많은 내 체질이 상파울루의 더위에 땀 흘려 대항하느라 연신 뒷주머니에서 꺼내 든 손수건으로 닦아 내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비칠까 봐 걱정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혹시 요새 모든 국가와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신종 인플루엔자에 감염이라도 된 듯한 모습으로 비칠까 봐 겁날 지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택시 승강장이 있는 문밖으로 나섰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자연의 바람이 더 좋은지 땀도 멈춰진다. 한참을 앉아있으며 매무새도 다시 고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있던 창구에서 그를 찾을 수 없고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서서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럴 리야 없지만 혹시 나를 떼어내려고? 하는 순간적인 생각을 무시하고 그 부근에서 계속 기다리기로 한다. 괜스레 나 혼지 우왕좌왕해봐야 일만 그르치게 된다는 생각에 이럴 때는 가만히 한 곳을 지키고 있는 인내심이 제일 좋은 방안이다 는 것을 믿기로 한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다시 나타나서는 다음 공항에서 갈아타게 될 비행기표 구하는 것을 실패했으니 그곳에서 마지막 도착지인 리오그란데 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되겠다는 말을 한다.
거리는 약 300킬로미터이며 4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덧붙임에 다른 방법은 없고 이미 가 있는 내 짐을 너무 늦어지기 전에 찾기에도 그 방법이 그나마 제일 일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다른 한편으론 자동차로 이동하는 상황을 새로운 미지의 여행을 추가한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퍼뜩 들어선 생각이 그대로 그 의견에 쉽게 동의해주게 한다.
그는 이제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여 중개인으로서 제일을 흡족하니 해주지 못한 점을 사과하며 1번 출구로 가는 데까지 따라와 지금 가면 얼마 후 개찰할 것이란 말을 남겨주며 떠나간다. 물론 포트 알레그레에서 나를 차로 리오그란데 까지 태워다 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다는 약속을 해주면서 말이다.
한참을 기다리며 마치 우리나라 시외버스 대합실 같은 분위기의 국내 여객선 탑승 로비에서 기다리며 승객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각양각색의 인종이 각자의 독특한 의상으로 어울려 하나를 이루고 있는 다민족 국가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젊은 남녀도 얼굴색에 관계없이 친밀한 감정을 표현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14시 55분.
한 번의 셔틀버스로 우리들을 옮겨 실어 받아준 비행기는 동체가 빵빵하니 튼튼해 보이는 날개 밑에 각각 하나의 흡입구를 장착한 제트기이다.
좌석은 세 개씩 각각 좌우로 있고 그 중앙에 통로가 있으며 앞쪽 조종석에 이어진 벽면으로 막아진 곳에 앞쪽 화장실이 있다. 비교적 간단한 구조의 단거리 국내용 비행기라 느껴진다.
아직 이륙할 시간까지는 10여분이 남아 있지만 곧 문을 닫더니 잠시 후 비행기는 슬금슬금 움직인다. 갑자기 쏴아~ 하는 빗줄기가 뿜어지는 소리에 이어 동체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강한 빗줄기가 창 밖에 여러 가닥의 검은 줄 모양을 그어대며 뿌려주고 있다.
거의 순식간에 구름이 모여들어 어두컴컴해지고 축축이 젖어드는 공항 분위기를 한순간에 밀쳐낼 궁리라도 했는지, 잠깐 제자리에 서서 숨 고르기를 하던 비행기가 귀청을 시끄럽게 하는 굉음을 내며 속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내 공중으로 가볍게 떠오르는 기분을 느끼게 하더니 잠시 후에는 구름바다가 저 아래 보이는 환한 공간 안으로 나를 모시듯 편안한 비행을 시작한다.
국내선 항공으로 비행시간이 두 시간에 못 미치는 비행인지라 기내 서비스로 식사를 주는 대신 사탕과 주스 류의 음료수 그리고 메인 코스인양 손바닥 크기를 넘어선 쵸코 레이트 한 개를 나누어 준다.
나중에 맥주도 서빙한다고 해서 흑맥주를 한 캔 받아 들었다. 씁쓸한 맛이 입에 감돌아 사탕으로 달아있던 입안을 시원스럽게 닦아내 주는 느낌이 좋다.
구름 위 날씨는 계속 밝고 맑은 상태를 유지해주고 있어 쾌적한 기분으로 있는데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다. 쉽게 기수를 숙이는 것 같더니 땅에 부딪치는 타이어의 팽팽한 마찰음이 아주 경쾌하게 들린다. 참으로 편한 마음으로 여행하게 한 비행기였다. 앞쪽 문에 램프 웨이가 들이대 진다.
이번에도 앞장선 축에 끼어 출구를 향해 나가니 계단 아래에서 나를 찾는 표지판을 든 노인네가 있다. 아는 체 눈길을 보내며 접근한다.
-캡틴 전?
하며 묻는 그에게 본인임을 확인시켜주며 먼저 보냈던 짐을 찾으러 가겠다니 안내해준다. 바로 계단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문제 된 짐을 찾는 곳이 있었다.
짐 표를 받아 들은 직원이 잠시 후 내 가방을 갖고 나타나더니 짐과 함께 넘겨준다.
안내인은 거기까지 나를 안내해준 후 이번에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운전기사에게 나를 인계해주며 리오그란데까지 데려다 줄 운전기사라고 알려준 후 작별을 고하고 떠나버린다. 그 역시 이런 일을 업으로 하는 중개인일 뿐이다.
벤형의 공항 택시로 다가서더니 그는 내 짐을 받아 뒤 칸에 실어주곤 나더라는 운전기사 옆쪽에 앉으라고 한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5시에 다가가고 있었지만, 지구촌 남반부인 이곳은 지금이 겨울 철인 셈이라 벌써 어둑한 기운이 찾아들기 시작하고 있다.
시내를 빠져나와 들어선 왕복 2차선인 도로는 최고 80킬로에서 곳에 따라서는 20킬로에서 60킬로까지 차별된 속도제한을 가진 모양인 데 이곳에서는 준 고속도로인 모양이다.
적당히 추월하면서 달리는 영감님의 운전 솜씨가 유연해서 감탄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세가 얼마냐 되느냐는 식의 공손한 물음을 던졌더니 그는 운전 경력이 몇 년이냐고 묻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사진 : 어두워 가는 도로 위를 시속 80km의 속력으로 남하하면서 셔터를 눌러본 카메라는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손가락을 펴 보이며 54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무리 외국인의 눈으로 본다 해도 그의 나이가 54세만 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는 최소한 일흔몇 살은 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던 중이다.
더하여 자신이 운전을 아주 잘한다고 자찬하는 제스처를 쓰며 웃는 모습에서 그가 자신의 운전 경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그 운전한 경력을 54년이라 표현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챈다.
중간에 급유를 한번 하느라 주유소에 들릴 때 빵을 몇 조각 사서 허기를 달래기로 한다.
목적지인 리오그란데에는 그리고도 한참을 더 달린 밤 8시 45분 경이되어서야 도착하여 호텔을 찾아들었다.
VILLA MOURA HOTEL.
아직 배가 부두에 접안하질 않고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있으라고 대리점이 배려 해준 곳이다.
파김치 같이 녹초가 된 몸을 3층 305호실로 안내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에서 아침 식사만 기내식으로 했고 하루 종일 굶은 상태이지만 배 고프기보다는 어서 자고 싶은 생각에 얼른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눕는다.
집을 떠난 지난 사흘간의 긴 여정의 종지부는 그렇게 찍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