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를 통과하며

by 전희태
090620-XANADU_0251.jpg < 적도를 통과하는 바다위에는 붉은 줄은 없고 뜨거운 태양 만이 내려쬐이고 있었다.>


하지(夏至). 오늘이 하지이다. 일 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 뭐 간단히 설명하면 그런 날이다. 따라서 하지의 반대인 동지(冬至)는 밤이 제일 긴 날이 되는 거겠지.


그런데 여기, 우리가 달리고 있는 남반부의 바다 위에서는 아무래도 그 말의 의미가 반대로 된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건 결코 하지의 모습이 아니라 동지 무렵의 전형적으로 긴 밤을 가진 모습인 것이다.


 이틀에 한번 꼴로 한 시간씩 당겨 썼던 선내 시간으로 인해 시간관념이 많이 흐트러져 있는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침은 일곱 시가 넘어야 밝아오고 저녁은 다섯 시면 이미 깜깜해지기 시작하는 지구 상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절기를 갖고 있는 때문이다.


 이렇듯이 날짜로서야 하지 속에서의 삶이지만 이름의 의미와는 반대되는 동지로 살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의외로 간단한 것이 우리는 지금 지구의 남반구에서 움직이면서 북반구의 기준에 생각을 고정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배가 달리고 있는 침로가 065도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동북동 정도의 방향인데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면 선수 마스트 끝 왼쪽으로 치우진 상황을 연출하니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통상적인 개념에도 많이 벗어난 북쪽에 가까운 동북 방위에서 뜨는 셈이다.


이유인즉 바로 오늘이 해가 최대로 북쪽으로 올라간 날이고 우리 배가 움직이는 곳은 적도 아래쪽인 남반구이니 더욱 북쪽으로 치우쳐 보이는 것이다..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태양을 중심점에 두고 스스로 도는 자전과 공전을 함께 하는 지구는 자전의 축이 똑바로 선 수직으로 도는 게 아니라 23도 27분 기울기를 가진 상태로 돌고 있다.


자전축이 기울지 않은 채 공전을 한다면 햇빛은 항상 적도 부근만 돌아가며 받게 되겠지만 자전축이 기울어져 공전을 하기에 그 기울어진 범위인 23도 27분만큼 상하 즉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햇빛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팽이가 어느 정도 기울기를 가지고 일정하게 돌고 있는 모습(*1)을 생각해보자.

이때 높이가 고정된 불빛이 팽이를 중심점으로 한 궤도를 돌면서(*2) 빛을 비친다고 하면, 팽이의 입장으로 그 불빛을 볼 때 자신이 기울어진 만큼 불빛이 아래위로 넘나드는 것처럼 보일 게다.

그 팽이가 지구이고 (*1)을 지구 자전 운동으로, (*2)를 지구 공전 운동으로 대입해 보며 이해해보자.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으로 인해 해가 제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경계가 되는 선, 즉 하지선의 지구 상 위치를 북회귀선 (The Tropic of Cancer)이라 하고 반대의 경우 남쪽으로 최대로 내려가는 선 즉 동지선은 남회귀선( The Tropic of Capri-corn)이라 한다.


 이렇게 오르내리는 최대의 경계가 되는 남북 회귀선의 지구 상 위도가 각각 북위 23도 27분과 남위 23도 27분이 되는 것이다.


 결국 태양이 지구에 빛을 보내는 범위는 지구의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각각 23도 27분까지의 범위 내를 계절에 따른 시간과 함께 오르내리며 비추는 셈이고 이것을 북반구 위주로 생각하니까 하지는 밤이 짧고 낮이 제일 긴 것이 되지만 그 시간 남반부의 하지는 밤이 길고 낮이 짧은 것이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남반구에서 만나는 계절은 북반구와는 그렇게 반대이니 하지를 동짓날 만난 듯이 느끼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마도로스 되어 지구의 곳곳을 누벼야 하는 나로서는 계절조차 반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숙명처럼 내 안에 들어와 있다.


 위의 이야기를 천문 항해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면 천구(天球 CELESTIAL SPHERE)), 를 펼쳐 보인 후 그 위에 천의 적도(天赤道 CELESTIAL EQUATOR)),를 그려준 후 그에 23도 27분의 기울기를 가지고 돌게 되는 황도(黃道 ECLIPTIC)의 궤적을 덧 붙여 주면서 두 개의 궤도가 만나게 되는 춘, 추분점(春, 秋分點), 두 점과 두 궤도가 가장 멀리 벌어지는 점인 하, 동지점(夏, 冬至 點)으로 설명해야 한다.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에는 갈매기 서너 마리가 계속 우리와 같이 항해하며 따라왔는데 이미 그들은 다시 그쪽을 향해 가고 있는 다른 배로 밤의 잠자리를 바꾸어서 돌아가 버린 지 오래이다.


그동안 이른바 적도 무풍지대의 경계선인 10도선에 들어서기 전의 며칠은 쉼 없이 불어주는 바람으로 인해 작은 파도조차 잘 날이 없는 항해가 이어지고 있었다.


7월 3일 1912시. 드디어 적도(赤道)에 도착하였다. 그날의 항해 일지 기사란에는 이런 기록이 들어있었다.

1912: Vessel passing Equator from South to North at Lat.084-44.7E.

(1912: 본선 동경 084도 44.7분 위치에서 적도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며 지나침.)

적도라고 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이제부터 북반구를 항해하는 것이다.


예전 처음 배를 타며 실습할 때, 적도를 지난다며 그곳에 빨간 줄이 쳐 있으니 잘 찾아보라고 다그치다가 그게 너무 허무맹랑하게 느끼는 것 같아 보여서 그랬는지 슬그머니 그곳에 빨간색의 부표가 있다는 식으로 약간 양보하여 알려주어 긴가 민가 하는 의문에 휩싸이게 우리를 현혹시키는 작전으로 놀려 먹던 선배들과 승선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새삼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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