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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경보 소동

각종 경보장치가 주는 긴장

by 전희태
박용전화기.jpg 수화기의 손잡이 중앙 부위에 잠금장치가 엿 보이는 박용 전화기 모습.


선박의 선교(브리지)에는 자체 내에 설비된 모든 기기의 작동상태와 여러 가지 경보장치의 원활한 작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게 경보음을 발하는 패널이 여러 곳에 있다.


이런 경보장치 중 배 안의 전화기들을 사용하고 나서, 다음번의 원활한 통화를 위해, 연결되었던 양쪽이 모두 정확하게 끊은 후에 송수화기를 제자리에 제대로 놓아주었는지 여부를 살필 수 있는 경보장치도 있다.


그러기에 제대로 제자리에 놓여있지 못한 송수화기 때문에 브리지에 있는 경보 벨이 그 잘못 놓인 상태를 트집 잡아 있는 목청껏 경보음 소리를 질러댈 때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어쩌다 브리지 내 각종 경보 패널 가운데 가장 큰 소리로 내는 전화 경보 벨 소리이기 때문에 브리지의 당직자들은 별거 아닌 일로 짜증을 감수하며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아침 식사 후 방에 돌아와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어 한참 즐기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 앞에서 나를 찾는 인기척을 낸다. 얼른 방문 앞으로 다가서며 보니 당직 타수이다.


-무슨 일이야? 하니

-선장님 방의 수화기가 잘못 놓여 있습니다. 찾아온 당직 타수가 정중히 말한다.

-그래, 알아보지.


사무실 책상 옆의 수화기를 살펴보니 소리가 나지 않는 끊겨있는 상태이다.

이번에는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가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전화기에서 수화기를 들어보려는데 그 녀석은 통화 가능 상태의 음을 내뱉고 있다.


이 두 전화기는 한 선에 연결된 상태이니 침대 옆의 녀석이 이상을 벌인 장본인인 모양인데 사실 아침에 전화를 쓴 적이 없기에 조금은 이상한 마음이 든다.


또한 침대 옆이라고 해서 다른 방의 전화기처럼 수면 중에 몸부림치다가 송수화기를 움직이게 만들 정도로 침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내 방 전화기가 경보음을 내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 상황이다.


예전에도 종종 브리지에 올라갔다가, 선원 방에서 전화기가 잘못 놓여 있으므로 해서, 서너 번 에 걸쳐 그런 경보음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때마다,

-누가 전화를 걸고는 전화기도 똑바로 못 놓고 있어?

하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했던 나이기에 이 아침의 내 방 전화기의 반란은 뜻밖에 허를 찔린 기분을 준다.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해. 하는 말을 평소에 해가며

-기계를 쓰는 주인이 잘 못 했기에

-전화기를 사용 후 잘못 놨기에

-그런 경보음을 내게 만든다는 이론을 전개하던 나였다.


그런데 내가 사용 치도 않고 그렇다고 누가 전화를 걸어온 것도 아닌데 저 혼자 경보음을 내게 만든 내 방 전화기를 보며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도 어떤 면에서는 편리를 해치는 이런 식의 고장도 생기게 하누나! 하는 새삼스러운 변명을 그 안에서 찾아보려는 나를 만나며 쑥스럽기만 하다.

앞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함부로 말을 하는 태도는 삼가야겠다는 마음을 새삼 되새겨 본다.


지난 항차에 승선 실습을 마치고 하선한 실항사 방의 전화기가 만들었던 작은 소동이 또 떠 오른다.

야간 2항사 당직을 실습하고 방으로 내려가, 곤한 잠을 자던 중 꿈결에 몸부림을 쳐서 침대 옆 전화기를 밀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화기가 떨어지며 경보음이 울게 되었던 것이다.


배에서 사용하는 전화기는 <박용 전화> 기라는 특수 명칭을 가지고 있으며 육상의 일반 전화기에는 없는 특별한 구조가 한 가지 첨부되어있다.


즉 송수화기가 전화기 몸체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게 잠금장치가 덧붙여 있는데 이는 황천을 만나면 마구 움직이는 선체 운동 따라 함부로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잠금장치가 있었는데도 분리되어 경보음을 내게 만들었다는 것은 잠을 자는 몸부림이 꽤나 거칠었거나, 순간적인 선체 동요와 맞물려서 그랬으리라.


그 날 새벽 6시경 그 방 앞에 가서 몇 분 간 방문을 두드리며 전화기가 잘못 놓아진 것에 대해 알려주고 바로 잡으려고 했던 당직자가 바로 오늘 내 방으로 찾아왔던 그 조타수이기도 하다.


이른 시간이지만 전화로는 알릴 수가 없는 형편이라, 여자(실항사는 여학생이니) 혼자 자는 방이지만 찾아가 문을 두드려야 했고 그 일에 조금은 곤혹스러워했을 그 친구의 표정을 생각해 본다. 오늘 아침 내 방에 찾아왔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다른 모습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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