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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의 출항

출입항 도우미 터그보트

by 전희태
ũ%B8%B0%C5%E6%BAε%CE(1593)1.jpg 그래드스톤항에 입항 하던 날



저녁 여덟 시 15분으로 예정된 파이로트는 제 시간대로 승선했고, 하역 작업도 마치게 되어 출항을 서두른다.

우리 배가 출항하는 자리에 들어설 배도 이미 저만치 TURNING BASIN에 들어와서 호시탐탐 사냥할 기회를 노리는 커다란 동물마냥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우리 배가 부두에서 떨어지려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항구 터그보트의 절대량을 넘어서는 출, 입항선의 전 선석 가동으로 인해 바빠져 있는 예인선들은 미쳐 우리 배 옆에 오지 못하고 있어 지금 그들의 출현을 잠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윽고 두 척의 터그가 나타난다. 좌현 쪽에다 줄을 잡아주며 출항을 서두르니 2045시이다.


계류삭을 모두 걷어 들이고 엔진 사용을 시작하면서 터그보트도 돌려보낸 후 항로에 들어섰다.

이윽고 항로를 다 빠져나올 무렵, 도선사용 헬리콥터가 날아와 파이로트를 싣고 떠난다.


헬기의 접근을 위해 환하게 켜져 있던 갑판상 등불 들을 본격적인 항해에 나서기 위해 모두 꺼버리고 항해등만 남긴다.


너무 밝아 시야를 가리던 불빛이 제거되니, 저쪽 앞쪽에 나타난 입항선이 FAIRWAY BEACON NE 3 MILES 지점에다 투묘를 하려고 움직이는 항해등 불빛이 갑자기 가깝게 느껴진다.


부득불 우리가 통과해 나가야 할 침로의 앞을 가로질러서 자신이 투묘할 자리를 찾아가려는 그 배로 인해 나는 빨리 결단을 내려서 움직여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도선사가 내리기 전에 그 배를 불러서, 우리가 FAIRWAY BEACON을 지나고 나면 좌현 쪽으로 변침 하여 북향으로 침로를 잡으니 우리의 침로를 가로질러 나오지 말라고 말하였을 때, 동의한다는 이야기까지 해놓고서도 그 모양이다.


또한 입항선은 출항선의 행동에 방해되는 행동을 할 수 없는 충돌 예방법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조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투묘를 위해 속력도 줄이고 이제 투묘 예정 위치에도 도착했을 것 같아, 더 이상 우리 배의 선수 쪽을 침범하지 않으리라 판단되어, 그 배의 홍등을 보면서도 좌현 변침을 계속 이행하고 있다.


이윽고 우리의 침로로 찾아 들어가는 변침점에 도착할 무렵 그 배에서 연락이 온다. 자신은 기관정지하여 대수 속력이 2노트이니 조심해서 지나가라며 좌현으로 더욱더 변침 할 것을 요청하여 온다.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나도 알았다고 이야기해주며 그들에게 후진 엔진 사용할 것 또한 요청하며, 본선의 타를 좌현으로 더욱 돌리어 선수가 좀 더 그 배와 벌어져 위험권을 벗어나도록 조선을 지휘하며 통과한다.


이렇듯 조선을 위한 위험 상황은 순간적으로 어디에도 있는 것이니 항시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금년 정월 초하룻날의 밤은 이렇게 출항하는 것으로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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