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 중의 에티켓
Photo by Capt. Jeon
회사는 이번에 실습이 끝나 하선하는 여학생 실습 항해사와 교대하여 새로운 여학생 실습 항해사를 또다시 우리 배로 배정한다는 선원 교체 예정서를 보내주었다.
다른 회사와 달리 여성 해기사에게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는(?) 우리 회사에서 이제는 맡아 놓고 그녀들의 승선 실습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구체적인 말은 안 해도 본선더러 맡으라는 무언의 지시인 셈이다.
본선의 주된 항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호주/우리나라 간이고, 신조선이며, 거주구역도 여자 실습생이 승선하기에 타선들보다는 훨씬 나은 설비로 판단되어서 처음 보내어진 여학생 실습생을 별 과오 없이 치러내니, 매년 받게 되는 여학생 실습생을 우선적으로 본선으로 배정하는 듯싶다.
처음으로 여학생을 받아 항해사로 실습시키려 했을 때에, 나 자신이 딸자식이 없는 입장이라 마치 자신의 딸이라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며 지도 감독하면 되겠거니 하는 막연한 판단만을 믿고 실습생을 대하다 보니 언제나 곤두서 있는 신경으로 피곤하기도 했다.
잔소리꾼은 아니지만 꾸중을 해야 할 경우라면 따끔하게 타이르려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잔 소리쟁이로도 보였던 것 같다.
딸 같이 대한다는 마음으로 아무런 사심 없이 실습 중에 사진도 같이 찍어 주었는데, 그때에 그녀들은 진짜로 아버지 같은 믿음으로 나에게 팔짱을 끼어오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 채 찍었던 사진도 있었다.
나중에 그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된 아내는 그런 포즈로 사진까지 찍으며 그 애들의 실습을 감독하는 것은 그르다는 항의(?)를 해와서 참으로 곤혹스러운 마음이 들은 적도 있었다.
나의 순수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이유를 들어 항의하면서, 결론적으로 그 애들은 내 딸아이 들이 아니라 이성일 수 있다는 점을 결코 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보는 사람의 생각이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볼 소지가 많은 여성 해기사를 대하는 문제들이기에 일이 불거지려면 생각지도 않은 방향에서 이상한 루머를 포함하며 시끄럽게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상 생활도 사람 사는 사회이긴 하지만, 고립되고 제한적인 환경이기에 일반 사회와는 다르거나 꼭 달라야 하는 점이 있음을 인정하며 조심해야 할 것을 몇 가지 꼽아 본다.
첫째로 다른 사람의 방을 방문하는 일을 들을 수 있는데, 그 방이 또 침실도 된다는 자체가 동성끼리의 격의 없는 내왕과는 차별을 들 수밖에 없으므로, 시간을 정하여 밤늦은 시간에는 개인적인 왕래가 없도록 정리해 주어야 한다.
둘째로는 동료를 대하는 것이 사람 따라 편파적으로 되어 친,불친을 너무 티 나게 나타내도 선내 분위기를 해치게 되니 그런 태도를 지양하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셋째로는 선내는 특히 고립된 상황이므로 때에 따라서는 심적으로 이성 간의 감정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같이 당직에 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항시 면밀하게 관찰해주어 불필요한 감정의 확대가 발생하지 않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즉 당직 시간을 일항사, 이항사, 삼항사, DAY WORK TEAM 순으로 항차별로 (대략 1개월 반쯤 되는 기간) 그 당직에 임하도록 하여 6개월의 실습기간을 활용하여 대인 관계도 여러 사람을 대하여 알게 하고 선내의 일도 두루 살피게 하며, 실무에 처음 나서는 3항, 기사의 직무를 마지막 내리는 항차에 집중적으로 교육하도록 진행한다.
넷째로는 선내에서 실습생에 대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마지막 해결의 결정을 짓는 선장과의 언로(言路)는 항시 열려 있다는 인식을 모든 사람에게 주도록 하며 실습생 본인들도 그 점을 십분 활용하도록 유도해준다.
끝으로 실습생이 실습 기간 중 좌절하거나 기분이 침잠되는 경우, 용기를 북돋아 주고 또 이 실습을 무사히 끝내는 것이 마지막 목표한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원하던 일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 중도하차하려는 좌절감이 들지 않도록 해주어서 차후 실제로 취업하는 과정으로 바르게 유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