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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리 저 멀리서 온 주부식

주부식 선적, 항만노조내규

by 전희태
%B1׷%A1%B5彺%C5%E6%BE%EE%C7%D7(1889)1.jpg 그래드스톤항 어항구역의 모습이 저 멀리 보인다.



Gladstone을 찾아온 게 만 2 년이 넘어서이니 그동안 혹시 변화된 이곳의 내용을 잘 모르겠기에 주부식 수급은 금방 연락이 가능한 현지인 회사에 의뢰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헌데 조리장이 말하길 이민 와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식에다 주문하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는 의미로라도 해줘야지요. 쉽게 응낙하여 그쪽으로 주부식 선적을 요청토록 하였다.


연락을 하면서 보니 그 선식은 이곳 Gladstone에서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퀸스랜드의 주도인 브리스베인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곳까지 거리를 따지면 530 여 킬로미터나 떨어졌으니 우리식 이수 로는 자그마치 1,300리가 넘는 거리이다. 물론 주는 같은 퀸스랜드이다.


지리적인 거리는 이 정도지만, 현재 호주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집중 호우로 인한 물난리로 브리스베인과 Gladstone 간의 도로 중간의 길이 막히고 끊기는 일로 인해 평소 다섯 시간이면 되던 운송 시간이 12시간도 걸리는 시간의 장거리 화가 실은 더 걱정스럽다.


이미 본선으로 보낼 물건은 모두 차에 실어 놓은 채 이제나 저제나 우리 배를 향해 떠날 시간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마침 연결한 전화로 선식이 숨 가쁘게 이야기하더란다.

들으니 황당하다. 자칫 잘못되면 우리는 부식을 싣지 못하여 낭패를 당하고, 그들은 물건 준비를 하고도 싣지 못하여 큰 손해를 보게 될 수도 있을게 아닌가?


좋은 의미를 부여하며 잘 해보려다가 금년 까치설날은 이런 걱정으로 좀은 조마조마한 마음속에 하루를 넘겨야 할 듯싶다.


그 사람도 우리나라에서 8,000 킬로미터( 우리 이수로 20,000리)나 떨어진 바다를 건너와 새롭게 자리 잡고 개척하는 삶을 살려하는 이민자인데, 어쩌면 마음의 거리는 더욱더 멀리 벌어지는 착잡함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주란 땅이 실은 섬이지만, 대륙으로 치고 있는 넓은 곳이니, 그까짓 1,300리쯤의 거리가 먼 거리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온도가 올라가면 상하게 되는 냉동육이나 생선도 실려 있는 부식품을 트럭으로 배송하려니 아닌 말로 무척 신경은 쓸 것이라 여겨진다.


이곳에도 어제부터 호우 주의보가 내려져 있다고 하는데, 하늘을 보니 회색빛 구름들로 잔뜩 덧칠해 놓고 이제나 저제나 때를 기다리는 게릴라들의 몰골을 보이어 마음이 안 놓인다.

제발 부식을 무사히 싣고 거래를 원만히 끝낼 수 있도록 이곳 날씨만이라도 지금 그대로를 유지해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고 너무 맑은 날씨는 원하지 않는다. 햇볕이 나타나면 자외선을 겁내야 하는 무척 뜨거운 날씨가 예약될 수도 있으니까...


밤을 새워 달려서 새벽 두시쯤 선식의 배달차가 도착했단다.

설날인 오늘 중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일인데, 새벽 운동 길에 만난 당직자가 그들이 두시쯤 도착하여 배의 게스트룸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니 새벽부터 기쁜 소식 듣게 되는 금년은 아주 좋은 일들로 연 이어진 좋은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평소에는 아무리 늦어도 8시간이면 달려올 수 있는 거리인데, 14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는 왕년에 배를 40년이나 타고 은퇴하였다는 지금 67세인 할아버지와 그분보다는 좀 젊은 또 한 명의 백인 늙은이 둘이서 우리 배에 주부식을 전달하기 위해 밤을 새워 달려온 것이다.


선식을 맡은 교민은 우선 현지 사정에 밝은 현지인으로 물건을 배송하고 자신은 아침에 찾아올 것이란 전언과 함께 그들을 보낸 것이다.


아침 8시가 되었다. 떡국 한 그릇으로 설날 아침을 지낸 전 선원들이 당직자만 제외하고 모두들 나와서 부식 선적 작업에 참여한다. 설 차림은 점심때에 푸짐하게 차리기로 작정하고 작업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주부식 선적을 위한 작업은 본선 선원들이 힘을 합쳐 행하는 일이지만, 이런 일을 할 때에는 하역회사 Foreman(현장 책임자)을 통해 묵시적으로 이곳 부두 노조의 인정을 받아 시작해야 하며 작업 시간도 두 시간을 넘기지 말고 끝내야 하는 일이다.


만약 두 시간이 넘어 작업한 것을 그들 노조의 검사원에게 적발 당 할 경우, 까다로운 친구를 만나면 규정하고 있는 액수대로 몇 천불의 벌과금을 물어야 하는 법들이 호주를 비롯한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노조 내규로 존재하므로, 작업시간에 많은 신경을 쓰며 일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단지 본선 위(갑판)에 올려놓은 후, 그것을 창고로 옮기는 작업은 그 두 시간 안에 넣지 않아도 되기에 작업량(부식물)이 많을 때는 우선 본선에 올려놓는 일부터 하여 육상에 남아 있는 잔량이 없도록, 외부에서 본선으로의 작업부터 끝내고 천천히 본선 내로 올려진 물건을 창고로 이송하는 작업 요령으로 이들 규정과 타협해가는 것이다.


우리 돈 주고 산 것, 우리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는 건 한국식 사고방식이고 이들은 자기 나라에서 생기는 모든 일거리는 모두 자기네가 해야 하는 일자리이기에 남에게 줄 수 없다는 노조의 파워가 있으므로, 비록 우리가 산 물건이지만, 자신들의 구역에서 발생한 일이므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란 뜻을 가진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우리가 싣게 된 주부식이 적은 양이기에, 한 시간 정도 일하면 금 방 끝날 수 있는 일이라 그 규칙에 대해 별 신경은 안 썼지만, 장거리 항해를 대비하여 제법 많은 물품을 구입할 경우에는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임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좀 억울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들 노조의 규칙이기도 하다.


선원들은 자신이 잘하는 특기대로 작업에 참여하여 설날 오전 중에 주부식 구입과 선적 모두를 무사히 끝내주었다.


흐르는 땀을 닦고 몸을 씻은 후 깨끗하게 차려입은 설빔 차림새로, 모두는 특별 부식으로 푸짐하니 차려진 점심 식탁이 기다리는 식당에 모이면서, 새삼스레 새해 인사와 덕담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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