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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an 28. 2019

밀항자 방지 수색

낭만이 없는 밀항자 수색


 석탄을 세계로 수출하는 남아공의 리차드베이 항.

나는 케이프 사이즈의 벌크 캐리어에 승선한 이후 이 항구를 자주 드나들었다. 이 나라가 가지고 있던 인종차별 정책인 악명 높았던 흑백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그늘도 보았고 또 그 정책이 무너지며 만델라 대통령이 들어서는 것도 지켜보았던 항구이기도 하다.


 이제 월드컵 행사도 치러 내는 저력을 보이는 아프리카 내에서는 일등을 달릴 수 있는 국가로 되었건만 아직도 치안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치안 여건이 어려운 상황이란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일로 밀항자 발생이 자주 생기며 이는 이곳을 찾는 우리 뱃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일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밀항자 모두가 이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 주위의 못 사는 아프리카 국가에서 흘러 들어온 유민들이란 점이 남아공으로서는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뱃사람에게는 얽혀야 하는 관련 나라가 한 곳 더 추가되는 상황이므로 더욱 괴로운 일로 다가서는 것이다. 


 만약에 이곳을 출항한 후 선내에서 그런 밀항자가 발견되었을 경우 그 뒤처리를 하려고 배에서 취할 행동의 상대 당사국이 한 곳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란 뜻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밀항자를 순순히 받아주는 나라는 없고 밀항자는 그 일이 발생한 지역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밀항 당사자의 송환될 때까지의 모든 경비와 시간을 책임져야 하는 애꿎은 피해 당사자인 배와 그에 승조하고 있는 선원 그리고 그 선주 회사가 짊어져야 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부담인 것이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나가기가 힘들었던 세월이었던 만큼, 밀항을 시도하여 세계로 나간 범법자(?)들의 이야기가 사랑이나 로맨스까지 곁들인 모험담으로 엮이면서 사람들의 호기심과 동경심을 이끌어내기도 했었다. 


 그렇듯이 밀항이란 단어는 어떤 애틋한 사랑이나 낭만을 감지하며 동감했던 그냥 아름다웠던 꿈에서 퇴색되면서, 이제 와서는 밀항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피해를 입어야 하는 선박 쪽의 책임자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밀항이란 단어는 이제 생각하기도 싫은 아주 지긋지긋한 말이 되어버렸는데 뭐니 뭐니 해도 밀항이 발생하면 선박을 소유한 선주가 제일 큰 경제적인 피해를 받게 되므로 회사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밀항자 수색을 출항 전에 철저히 하도록 요청하며 더하여 외부업체를 동원해서라도 이 일의 방지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거다.


 <한 도둑 열 사람이 막기 힘들다.>는 격언대로 본선 선원들만의 인력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고 회사도 그렇게 요청하였으므로 입항 전부터 대리점에 요청하여 밀항자 수색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수배를 단단히 부탁하고 있었다. 


    출항 전날 밤에 여섯 명의 인원이 본선에 올라와서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요청하였고, 출항 여섯 시간 전쯤부터 개 다섯 마리와 더불어 그들대로의 진행 방식으로 밀항자 방지와 색출을 위해 홀드, 창고, 거주구역, 타기 실, 기관실, 그 외 밀항자들이 경험상 숨어들었던 배 안의 모든 장소를 본선에서 찾아 비교하면서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수색 가능한 구역을 체크한 후 봉인을 해주어 그곳에는 밀항자가 없다는 표시를 해준 후 자신들의 일을 마무리하고 그 사례를 받고 떠나는 이들 직업인을 보며 묘한 감상에 젖어든다. 

<밀항자 색출에 일익을 담당한 덩치가 작은 개. 그 눈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치 사람 같은 표정이 느껴졌다.>  

선수 창고에서 밀항자의 숨어 있을 만한 곳을 뒤지고 있는 모습

 

사려둔 로프 속에 혹시 숨어 있을까 살펴보는 개와 사람



석탄이 실려 있는 선창 내에 숨어 있는가를 살피려 창내로 진입하는 개와 사람

 

선창 내부를 살피고 올라와서 잠깐 숨을 돌리는 수색원들의 모습
수색을 마치고 본선을 떠나는 수색원과 개의 모습. 출항하여 모든 라인이 걷어질 때까지 부두에서 지키고 있었다


밀항자 수색견을 실어 나르는 트레일러에 작업이 끝난 개들을 넣어주고 있다

 

이렇게 선내의 모든 출입문을 닫고 이곳 한 곳 만을 열어 두고 출입자를 체크해도 밀항자를 놓치는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밀항자 수색팀을 하선시키고 부두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본선

 

  땀 흘려가며 일을 진행하는 작업자들은 모두 백인 계의 청년으로 작업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나 구석구석을 뒤지는 모습에서 험상궂은 느낌을 받게 되니 마치 그들이 예전에 밀항자 당사자의 입장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다른 한편으론 옛날 노예사냥을 하던 백인들의 후손으로서 그때의 숨어있던 노예들을 찾아내던 노하우를 지금에 와서 다시 써먹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스개 같은 생각마저 떠 오른다.


 이들이 이렇게 사방팔방을 뒤지고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브리지 윙 데크의 엘리베이터 트렁크 출입구를 개방 검사한 후 수색 작업은 끝이 났다.


 그러나 그들은 배를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렀다가 대리 점원이 마지막으로 배를 떠날 때 같이 하선한다고 보고해 온다.


 그런 와중에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될수록 승강기 사용은 피하라고 선원들에게 주지 시키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바쁜 출항에 임박한 시간이라 누군가 사용하려 다가 고장이 난 것을 발견했던 모양이다. 


 지난 항차 광저우에서 본선을 지어낸 대한조선소에서 개런티 클레임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시행하던 중 인부들의 잘못으로 엘리베이터의 안전장치 부분을 고장 나게 한 사고가 발생하였었고 당시 그 부속품을 구할 수 없어 그 안전장치를 배제한 비상 라인으로 구성시켜 움직이던 중이었기에 우선 그쪽부터 체크를 시작했다.


 체크 결과 당장 고칠 수 없는 상황으로 생각되어 출항 후 고치기로 미루었고, 바로 그때 출항 작업을 위한 파이로트가 승선하면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서 브리지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니까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다며 버텨보는 일이 발생하였다.


 상황을 설명하고 달래듯이 양해를 구하여, 걸어서 브리지로 오르게 하는 데 성공하였기에 출항에 임하는 데는 문제가 없이 조치되었다. 


 출항 후 즉시 차분하게 승강기 관련 제반 사항을 면밀히 검사하여서 원인을 찾아내었다. 


 밀항자 수색팀이 수색했던 승강기 트렁크 통로에 대한 뒤처리를 원래대로 해주지 않은 때문이란 것을 발견한 것이다. 즉시 원상복귀시키고 재작동 해 본 결과 사용상에 이상 없음이 확인되어 한시름 놓게 되었다. 


 어느 배에 가던 내가 항상 강조하고 있는 선내 모든 사항은 사용 후 원래대로의 <제자리로 돌려주기>란 목표를 잠깐 일탈한 일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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