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의 비나신 도크(DOCK)
3개월 가까운 연가가 어느새 다 소진되고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무렵,
회사로부터 새로이 책임 선장으로 승선할 배가 D.S호로 내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교대를 하기 위해 그 배가 지금 기항하고 있는 곳을 향해 집을 나섰다.
석 달 가까이 육지에 머물러 조금은 무디어진 감을 바로 세우며, 사명을 받아 승선하게 된 배를 찾아가는 곳은 광양 항으로 그 배는 그곳에서 양하 작업이 끝나면, 정기수리를 위해 멀리 베트남에 있는 비나신 수리조선소를 향해 항해할 예정을 세워두고 있던 중에 나를 맞이해준다.
수리조선소에서 사용할 페인트를 위시한 이번 정기 수리에서 사용할 보급품들을 싣느라 바쁜 와중에 승선하였기에, 어수선한 분위기 하며 먼저 번 타던 배(OM호)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 낡은 배라는 선입견은 진짜 수리해야 할 곳이 많아 보이는 첫인상과 함께 이번 독킹 중에 일거리가 많겠구나!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잘해보자고 다짐하도록 만든다.
예전 같았으면 정기수리는 국내의 수리 조선소를 이용했을 터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인건비가 많이 올라 있는 국내 조선소보다는, 싼 수리대금이 메리트인 이들 후진국의 조선소를 이용하여서 그만큼 운항 경비를 절감할 수 있으니 회사가 심사숙고하여 택한 방책 이리라.
게다가 비나신 조선소는 현대 미포조선소가 해외에 건설한 조선소로서 현지 기술 인력과 대부분의 간부는 현대 미포의 직원이 맡고 있어, 수리를 독려하는데도 이점이 많으니 국내의 VLCC급 광탄선으로서는 처음으로 계약하여 찾아가는 모양이다.
무사히 선장직 교대도 하였고, 보급품도 모두 실은 후 DS호는 광양을 출항하였다.
마침 우리 배가 목표하고 떠나는 수리조선소인 VINASHIN DOCK에 미리 찾아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선대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착 즉시 선거에 올라가는 드라이 독킹이 아니라 안벽에 대었다가 오후에 독킹 하는 예정이 현재로서는 거의 확정되어 있으니, 독크인(Dock in) 하기 위해 조정해야 하는 드라프트(흘수) 수정은 도착 후 투묘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해도 되겠다는 의견을 준다.
공선 항해 중에는 충분한 감항능력((Seaworthiness)을 위해 제대로 된 발라스트를 주입하여 충분한 흘수를 만들어 가지고 움직이는데, 그렇게 준비한 흘수를 도착 즉시 선거에 올라가기 쉽게 만들려면 대폭 줄이는 일이 꽤나 까다로운 작업인데, 그걸 바쁘지 않게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니 한결 마음이 느긋해진다.
선수 쪽을 5미터 20 선미 쪽을 6미터 20으로 한다고 통보해 주었던 우리의 먼젓번 전보를 조금 수정할 것이라 이야기하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한마디만 더~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다시금 바짝 긴장감을 불러내 준다.
말인즉 그곳은 자잘한 좀도둑이 너무 많아서 볼트와 너트 같은 소소한 물품 조차 도난이 잦아, 현지인 조선소 근무자 모두를 이상한 눈으로 볼 수밖에 없으니, 일반적으로 타 수리선 독에 들었을 때는 그들에게 본선의 안위를 맡기지만, 여기선 그럴 수 없는 현실이니, 본선 자체로도 당직을 철저히 하는 최대의 신경을 써야 할 것이란 말이었다.
사실 볼트나 너트는 가격이야 얼마 안 되지만, 그들이 쓰이는 부위가 본선의 감항능력(堪航能力)을 버텨주는 수밀(水密)을 위한 잠금 같은 일에는 필요 불가결한 물품이므로, 우리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도난방지를 위한 당직에 온 힘을 다해야 할 판인 것이다.
도둑놈들 입장에서도 큰 돈은 안 되지만, 그래도 쉽게 빼다 팔아먹을 수 있는 도둑질이 쉬운 점을 노리는 거겠지만, 선원들 입장으로는 그런 것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떠났을 경우, 추후 바다 위에서 갖게 될 위험 부담이 굉장히 크니, 원인 제공은 미미한데 비해 그 결과는 너무 허망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전 선원을 불러 모아 놓고 현지 사정을 알려주면서, 도난 방지 및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각부서 별 사전 준비 방안을 며칠 내로 제출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제 이 배의 책임 선장을 하며 앞으로 몇 년을 지나다 보면 나의 정년퇴직 시기도 도래할 것이니, 근무하는 마지막 날까지 잘 해보리라 속으로 다짐하면서 내린 첫 지시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