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용 오토바이, 살수차가 있는 동네
드라이도크에 들어앉은 우리 배의 선수 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 멀리 조선소 담장 너머로 초록빛 야자수 숲이 우거진 속에 드문드문 집들의 모습이 점 박혀 보인다. 그곳에 동네가 있고, 이발소도 있고, 간이 술집도 있단다.
저녁 식사 후의 시간에 그곳까지 산책을 나가자며 권유하는 공무감독을 따라 오늘은 걸어서, 운동 삼아, 그 마을을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조선소 정문을 나서기 무섭게 어디서 보고 있다가 오는 것인지 부르릉 거리며 오토바이를 몰고서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라는 호객행위를 하면서 하나 같이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 복면을 한 모습으로 서로를 밀쳐가며 다가선다.
비포장 길을 오토바이로 달릴 때 날아드는 흙먼지를 피하려고 그리 차린 모습이라지만, 선글라스까지 더 하고 있는 형상이 호감과는 별로라서 거리감을 더욱 멀게 해 준다.
우리가 먼 곳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서 오토바이 탈 필요가 없다고 손짓 발짓해가며 거의 반 강제로 권유하는 그들을 뿌리치고는 마을로 가는 굽이 길로 들어섰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비포장도로를 조선소 담장을 끼고 조금 걷다 보니 조선소에서 나온 쓰레기를 소각하는 곳이 나타난다.
마침 조금씩 피어오르던 연기가 지나치든 작은 바람결에 의해 우리 쪽으로 슬쩍 끼쳐온다. 안 그래도 무더운 더위가 가 일침 받으니 더욱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에 등판에 땀이 흐른다.
전조등도 켜지 않은 커다란 특수차량 한대가 갑자기 컴컴한 앞 쪽에서 나타나 길을 막아서더니 위압감을 느낄 정도의 커다란 경적으로 우리더러 길을 비키라는 경고를 한다.
-뭐, 저런 놈들이 있어!
기분 나쁜 심정으로 길 한 옆 안전한 곳으로 비켜서며 구시렁거려 보는데, 지나치는 그 차량 따라 갑자기 발 옆에 확 뿌려지는 것이 있다.
건조하여 지나는 발걸음에도 흙먼지가 풀풀 나는 그 길 위, 우리를 비켜서게 했던 그 길 위에다, 트럭이 뿜어내 준 물방울들이 튀겨진 것이다.
-어쭈! 제법 기분도 내며 동네를 가꾸네!
방금까지 무례한 차량이라고 욕을 하던 생각에서 벗어나, 물기에 젖어든 대지가 풍겨주는 상큼한 흙냄새로 좋아진 기분은, 계속 물을 뿌리며 멀어져가는 그 트럭의 뒷덜미를 한참 동안 쳐다보게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트럭의 살수 행위는 베트남에서는 보기 드믄 단독의 수원지를 확보하고 있는 비나신 조선소가,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건기 중에 행하는 서비스의 하나란다.
촉촉히 젖어 한결 걷기가 수월해진 흙길 도로를 걸을 만큼 걸어 운동이 되었다 싶어 질 무렵, 집이 하나씩 눈에 뜨이더니 작은 동네를 이룬 곳에 이른다.
이쯤에서 어디 들어가 앉을자리를 눈여겨 찾아보려 하였더니 의견이 여러 가닥으로 나뉜다.
마침 어제 먼저 외출을 해 봤던 일행 중 누군가 유미 집이라는 <라이따이한> 여성이 꾸려나가는 맥주 집이 그중 낫다며 그 집으로 가자고 인도하니 모두 그 뒤를 따르기로 한다.
김씨라는 자신의 한국인 아버지가 지금은 60세이고 자신은 30세라는, 한국인 아버지와 월남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여성이 <유미 집>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작은 맥주 바인데 어두컴컴한 조명의 탁자 위로 땅콩과 함께 내어 놓는 유리병 맥주의 이름이 사이공이다.
지금은 이미 잊힌 이름인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 맥주의 이름 안에서 겨우 명맥을 찾으며, 그 도시에 대한 나의 아릿한 향수가 잠깐 떠 올려지는 중에, 우리들은 저마다 의자를 끌어당기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처음 온 곳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본다. 마침 길 건너편의 다른 술집에서, 몸살로 아프다던 선원 한 사람이 동료들과 외출 나와서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 친구! 그렇게 아프다고 이야기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저렇게 외출하고, 술 먹으면 안 되는 건데....
마침 나와 같이 자리 찾아 앉던 기관장이 그 친구의 출현을 발견하면서 하는 말이다.
이 곳에 입항할 무렵 몸이 아프다며, 당장 어찌할 수 없는 배안이건만, 병원에 보내 달라며 제 기분 나는 대로 떼를 쓰듯이 행동하던 그 선원의 태도가 생각나서, 비난의 뜻을 품은 이야기로 하는 건 데 나도 적극 동조하는 심경이다.
병원에 보내달라고 막무가내인 사람을 어르고 달래어 겨우 입항할 때까지 끌면서 가졌던 내 마음고생을 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그때를 나도 잊을 수 는 없잖은가?
희희낙락 거리며 놀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면서, 어디서 귀염 받는 직장인이 되기는 애초에 틀린 사람이 아닐까? 혀를 끌끌 차지만, 건강해졌으니 다행이라고 생각을 바꾸기로 한다.
그렇긴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런 사람이 하고 많은 대한민국의 성씨들을 외면하면서 희성일수 있는 나와 같은 동성동본을 공유하고 있단 말인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니 뒷맛이 영 아니올씨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