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바닷물과 하얗고 보드라운 모래가 있는
비나신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휴일을 맞이하였다. 해수욕장 물과 모래가 참 좋다는 말에 모처럼 별러서 외출을 하기로 했다.
승용차라도 상하 흔들림에 저절로 덜컹거리게 만드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핸들이 거의 제멋대로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데, 비나신 조선소의 한국인 근무자가 운전 안내하는 승용차를 타고 그런 길을 한참이나 달려서 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해수욕장 들어가는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막아서며, 외국인은 2,000동 자국인은 1,000동 그리고 자동차는 5,000동의 요금을 입장료로 받겠다는 월남 말과 영어로 쓰인 간판이 세워져 있다. 차는 그 앞에 일단 멈추었다.
해수욕장에 들어서기 위해 지불할 요금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마침 고액권으로 건네주니, 그들은 게시판에 적어 둔 입장료와는 상관없이 제대로 거슬려주지 않으려는 태세의 요금 징수를 시도 한다.
잠깐 작은 승강이를 벌이고서야 거스름돈을 제대로 받아 내었고, 그런 후 승용차를 주차장으로 진입 시키며 해수욕장 입장을 끝내었다.
습도가 높은 후덥지근한 날씨로 인해 얕으막한 언덕 위 야자수의 몸채 뒤로 보이는 푸른 바닷물이 더없이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수영 할 준비를(수영복) 안 하고 왔기에 그저 풍물만을 지켜보기로 마음먹는다.
껌,담배등의 물건을 들고 쉴 새 없이 바쁘게 오락가락하는 껌팔이 아이들과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할 일 없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다가 외국인이라도 만나면 열심히 옆에 와서 말을 붙이며 무엇이던 얻어 가려는 아이들이 번잡한 해수욕장의 풍경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자전거 위에 작은 화로를 올리고 그 위에 찐빵을 실은 장사꾼과 우리나라 50년대의 아이스케이크를 닮은 빙과를 담은 통을 싣고 모래사장 위로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장사꾼도 여럿이다,
바구니에 살아있는 게를 담아들고 열심히 흥정을 청하는 아이와 아줌마 부대들 그리고 목판을 벌려놓고 과일과 빵을 벌려놓고 장사를 하는 여인네들로 모래사장은 더욱 더 바쁘고 혼잡하다.
자리를 정하고 난 후, 부드러운 모래를 밟기 위해 모처럼 신발을 벗었다.
발바닥에 밟히는 모래의 촉감이 요 근래 비정상적인 감각을 남겨주어 걱정을 하던 내 발바닥의 상태를 잊어버리게끔 포근하게 다가와서 부드럽고 매끄럽게 문질러 준다.
흐뭇해진 마음이 들어서니 마침 옆으로 와서 흥정을 해보려는 게 장사의 말을 쉽게 받아들였다.
기껏해야 2 킬로그램 정도 될 양의 게들을 사제 저울을 동원하여 6킬로그램이라며 킬로 그램당 2,000동이라는 가격으로 12,000동을 내라던 흥정이 어느새 9,500동으로 낙착되었다.
마릿수로는 14마리라는 숫자를 다짐 받으며 삶아서 가져온다고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이들은 삶은 게를 가지고 나타났다.
아무도 숫자를 다시 세거나 확인하지 않고 그냥 먹기 시작했는데 한참 먹다가 그제야 게의 숫자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에 따져보려 했지만 이미 우리가 잘못한 셈법에 빠져 들었음을 알겠다.
흥정 때 너무 열심히 깎으려고 진을 다 빼어서였든지, 막상 마지막 확인할 때는 그냥 믿으며 넘어간 게 아닌가 짐작되니 <약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속담에 절로 빠져든 셈이다.
일행이 나를 배려한다며 골라준 제일 큰 몸체의 게는 약간 짭짤한 간으로 삶아져 게살을 발거 내어 먹는 맛이 그럴 듯한 편이었지만, 너무 컷기 때문인지 좀 덜 익혀진 비린내가 확 풍겨 나와 나중엔 먹기를 포기했다. 다행히도 그런 보기 상태와는 다르게 나중에 별 탈은 생기지 않았다.
오후에 해수욕장 앞 정거장에서 손님을 기다렸다가 떠나려는 버스에 한자로 <현대미포조선>이란 글자가 차 옆에 써 넣어진 버스를 만났다.
어찌된 일인지 호기심이 나서 확인하니, 이곳 조선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냥 장거리 노선버스란다.
차창 앞에 작게 쓰인 알파벳 글자에서 하노이라는 글귀가 보이니 그들의 수도인 하노이까지 가는 장거리 운행 버스인줄은 알겠는 데, 왜 자신들과 별 관계가 없는 이름을 써서 광고하고 다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든다.
첫 번째 이유는 차종이 H자동차 제품의 수입한 중고 버스로서 아마도 울산시 부근에서 사용되던 버스였던 모양으로 당시 쓰여 있던 안내 표지를 지우지 않고 그냥 사용하는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자신들이 올려다보며 원하는 것과 닮아가려는, 일종의 부적 같은 영험을 기대 해보려는 베트남인들의 심성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의견인데, 미포비나신 조선소 부장님의 생각으로, 그 또한 일리가 있어 보이는 견해이다.
아직 환한 오후 우리가 좀 일찍 해수욕장을 철수할 때, 손님을 반쯤 태운 그 버스는 한참을 부릉거리는 목쉰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