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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Sep 09. 2023

지식보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그것!



  항공기 내에서 기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비행 임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의 책임은 오로지 기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임무와 관련된 기장의 권한 일부를 부기장에게 위임할 수 있지만, 이 또한 기장이 관리·감독해야 한다. 위임된 사항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책임은 전적으로 기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장도 사람이다. 비행 전·중·후에 필요한 수십 가지 과제를 홀로 해결할 수 없다. 홀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많은 일을 빈틈없이,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내기는 불가능하다. 백 번 양보하여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 가능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장에게는 크루(Crew)가 존재다. 함께 기내에 오르는 부기장과 승무원 말이다.   



  크루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팀으로 모인 이들이다. 그리고 이 팀의 리더, 팀장은 바로 기장이다. 기장은 조종사이면서도 한 팀의 팀장이기도 한 것이다. 팀원 중 누군가의 실수가 자칫 많은 이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팀장은 무엇보다 팀원들의 몸 상태와 마음 상태를 세심하게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컨디션을 살펴야 하고, 그들의 성격과 능력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하며, 혹시나 임무 수행 중 불편한 부분이나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고자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기장은 조종사의 역할뿐만 아니라 리더의 역할도 거뜬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조종만 잘한다면 부기장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기장 양성 과정은 훌륭한 리더를 만드는 것보다 조금 더 고급 스킬을 갖춘 조종사를 길러내는 데에 머무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장이 되려면 부기장으로서 일정 시간 이상의 비행 경험이 필요하다. 규정에 정해진 비행시간에 도달하면, 그동안 쌓아 올린 비행 지식과 조종 기술에 대한 검증 과정을 거친 후 기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능력,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능력은 평가 항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평가 항목에 포함되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다.



  다행히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조종사인 듯하다. 기량이 우수하고 성품이 훌륭한 선배 조종사와 비행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비행을 준비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기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좋은 습관을 미리미리 익힐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팀의 리더로서 팀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자 노력해야만 팀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이 신뢰를 바탕으로 팀원들의 적극적인 조력을 이끌어내야지만 안전하고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음을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었다. 



  모든 조종사가 나처럼 운이 좋지는 못하다. 누군가는 권위적이고 괴팍한 기장 밑에서 몸 고생, 마음고생하며 안타까운 시간을 보낸다. 또 누군가는 선배들의 안 좋은 모습을 답습하며 리더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고 그저 뛰어난 조종사 중 하나에 그치기도 한다. 기장은 많은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가 속한 조직의 시스템은 많은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을 그저 운에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아가가 장차 몸담게 될 교육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는 법, 다른 이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국영수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고, 더 많은 지식과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을 익히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4차 산업 혁명 시대 이후의 세상에서는 지식과 기량만 뛰어난 사람은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지식과 기량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동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이며 팀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 진정한 '리더'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만이 필요할 뿐이다.



  육아 휴직으로 인해 조종간을 잠시 내려놓고 있는 요즘, 잊고 있었던 기장의 역할과 책임, 리더의 자리가 가진 무거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그때까지 '나는 어떤 기장이 될 것인가', '나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우리 아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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