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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Sep 05. 2023

기장(Captain)의 품격




  찌를듯한 고주파 소음을 내며 헬리콥터의 보조동력장치가 작동한다. 곧이어 각종 장비에 전원이 공급되고, 하나둘씩 작동을 시작하면서 불규칙한 소음을 쌓아간다. 조종석 머리 위, 상부 동체에는 1800 축마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엔진 두 개가 장착되어 있다. 엔진의 압축기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외부 공기를 끌어모으고, 이내 연소실에 연료와 불꽃이 더해진다. 



  연소실 내 온도는 섭씨 800도를 넘나들고,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고온/고압의 가스는 동력터빈을 강하게 회전시킨다. 동력터빈이 만들어내는 회전력은 여러 동력계통을 거치며 주 회전 날개 및 꼬리 회전 날개로 전달된다. 최종적으로 회전 날개가 회전수가 정상 범위 내에 이르며 육중한 덩치의 쇳덩어리는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마친다.



  엔진, 날개, 각종 장비들이 토해내는 엄청난 소음 때문에 조종사, 승무원, 탑승객은 머리가 멍해진다. 이어(Ear) 플러그를 양쪽 귀에 깊이 눌러 꼽고, 통신용 헤드셋을 장착한다 해도 우렁찬 엔진 소리, 천둥 같은 날개 소리는 여러 방어막을 '기어코' 뚫고 들어가 고막에 이른다. 



  적당한 백색소음은 집중력을 높인다고 한다. 하지만! 엄청난 흑색소음은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게 만들고, 듣고 있어도 들리지 않게 만드는, 그야말로 사고와 판단을 정지시키는 '흑마법'을 발휘한다.



  일터에서만 경험하리라 생각했던 흑마법의 저주를 집에서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저주를 부린 마법사는 바로 우리 아가... (x_x);; 예방 접종을 맞을 때도, 귀엽게 '뿌엥!!!'하고 짧게 울다 그쳤던 아가인데, 어느 날 저녁, 괴력을 발휘하며 온 집안을 흑마법의 저주로 물들여버렸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수면의식을 마치고, 마지막 수유를 하며 육퇴를 꿈꾸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아가가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고 "빼액!"(역대 최고음 달성...!;;) 소리를 지르며 아빠를 당황시켰다. 트림도 시켜보고, 젖병도 다시 물려보고, 자장가도 불러주며 평소에 하던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어디가 다쳐서 그러는 것은 아닌지, 어두운 조명 아래 연신 아가 몸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살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아가는 세상 떠나가라 울어재꼈다. 고막을 뚫을 듯한 울음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이내 아빠의 사고는 정지... (&_&) 거실에 있던 엄마가 들어와 아가를 건네받았고, 아빠는 그저 엄마 옆에서 울음을 토해내는 아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아가를 안고 "그랬엉? 그랬엉? 오구오구!"를 연발하며 아가를 달랬다. 몇 분 남짓 지났을까, 아가는 이내 안정을 되찾으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잉?... @_@;;



  문득 엄마의 행동에서 기장이 갖추어야 할 품격을 생각해 본다. 어떠한 위급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한 후,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 그리고 책임감! 절대 조종간을 미루거나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 아무리 요란한 소음이 정신을 멍하게 만들더라도 기장이라면 모름지기 기장으로서의 품격을 지켜야 할 것이다.


  

  아가를 품에 안은 엄마의 모습에서, 기장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I have contr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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