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에서 발견한 인생의 궤적
3040 세대라면 누구나 게임계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작, '스타크래프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PC방 문화가 태동하고 '함께 즐기는 게임'이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던 시절, 스타크래프트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독보적인 PC방 문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스타크래프트라는 강력한 촉매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소 게임에 큰 관심이 없던 저조차도 여전히 주요 유닛의 단축키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시절 이 게임이 가졌던 파급력은 실로 대단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최근 한 책의 표지에서 '스타크래프트'라는 글자를 발견하고는 홀린 듯 손이 갔습니다. 아마 다른 게임의 이름이었다면 무심히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업무 특성상 군사 분야에 늘 관심을 두어야 하기에 군사, 국제 정치, 전쟁 관련 서적을 즐겨 읽는 편이지만, 게임 이야기를 통해 군사 지식을 접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초반에는, 그저 게임을 좋아하는 어느 열성적인 '덕후'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자 본인을 소개하는 문체 역시 가벼운 농담처럼 시시콜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가 보여주는 통찰력은 예사롭지 않았고,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으로 그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예상대로 저자는 단순히 '게임 덕후'라고만 치부하기엔 무척이나 화려하고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수학한 수재였던 그는, 해병대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 북한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통일부 사무관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그의 행보는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뛰어난 학업 능력은 차치하더라도, 남들이 예상치 못한 경로를 선택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저자 역시 처음부터 완벽하고 뚜렷한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의 발자취를 하나하나의 독립된 '점(dot)'으로 본다면 다소 맥락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 점들을 선으로 이어보니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속성들이 보였습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의 진로나 비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오히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막막함 때문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고민에만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하다 보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고, 비로소 다음 점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공부'입니다. 제가 말하는 공부는 단순히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한 시험공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배우는 모든 과정을 의미합니다. 길을 잃었을 때, 주어진 조건 속에서 무엇이라도 열심히 해나간다면 다음에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이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오래전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점들의 연결(Connecting the dots)'을 위한 시발점, 아마 무엇이든 시도해 보고 공부해 보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득 제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저 역시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보니 지금의 위치에 닿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제가 대단한 무엇이라도 될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는 평범함 때문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금 생각을 다르게 먹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한 걸음이라 말하기조차 민망한 아등바등한 몸짓일지라도, 어제보다 조금 더 성숙해지려 노력하는 저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려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보려 합니다.
그렇게 점을 찍다 보면 언젠가 저만의 의미 있는 선 하나를 그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