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아빠 되기

내 삶의 이정표가 된 아버지의 뒷모습

by 이기장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경험인 동시에,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숙제를 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문득문득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곤 합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저 또한 제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스승과 친구들을 만나며, 안락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번듯한 대학과 직장을 얻어 세상 속에서 당당히 행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그 간절한 바람은 때로 '과욕'이라는 이름의 독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아이의 삶을 통제하고, 부모가 원하는 틀 속에 아이를 가두려는 집착으로 변질되곤 하죠. 그런 면에서 저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서, 제 삶의 주인은 오직 저 자신임을 묵묵히 일깨워주신 훌륭한 부모님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저에게 특정한 삶의 모습을 강요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능 덕에 학업 성적이 좋은 편이었지만, 부모님은 "공부를 더 잘해야 한다", "유명한 대학에 가야 한다", 혹은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을 일절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끔은 '나에게 너무 무관심하신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저를 방임에 가까운 자율 속에 두셨습니다.


그 침묵의 사랑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찾아왔습니다. 당시 저는 진학 문제로 담임 선생님과 큰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성적에 맞춰 '법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길이라고 주장하셨지만, 제 마음은 온통 '지리'라는 학문에 쏠려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만 있다면 굶어 죽어도 좋다는 어린 날의 치기가 가득했던 시절이었지요. 선생님은 고집을 꺾지 않는 저를 일주일간 유령 취급하시더니, 결국 부모님을 학교로 불러내셨습니다.


졸업식 때나 학교에 오시던 아버지는 그날 저녁, 어머니와 함께 교무실을 찾으셨습니다. 야간 자율학습 중이었던 저는 부모님이 선생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시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저 상담을 마치신 부모님께서 반 친구들 모두에게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고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을 뿐입니다.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한참이 흐른 뒤였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당시 담임 선생님은 각종 수치와 합격 데이터를 제시하며 저를 법학과에 보내야 한다고 부모님을 강력히 설득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조차 선생님의 논리적인 설명에 마음이 흔들려 '정말 법대에 보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묵묵히 듣고만 계시던 아버지가 단호하게 입을 떼셨답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는 제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었습니다. 아버지는 선생님의 데이터보다 아들의 진심을 믿어주셨고, 부모의 욕심보다 자식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셨던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제가 열망하던 학과에 진학해 후회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그날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좋은 길을 안내하고 싶은 욕심이 들 때마다, 교무실 책상 앞에 앉아 아들의 꿈을 지켜주셨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생각합니다.


제가 꿈꾸는 '멋진 아빠'는 거창한 것을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를 온전히 믿고 묵묵히 기다려줄 줄 아는 아빠, 나의 못다 이룬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않는 아빠, 그리고 비바람이 불 때 아이가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든든한 나무 같은 아빠입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그러하셨듯, 저 또한 제 아이에게 "네가 원하는 길이라면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은 지능도, 재산도 아닌 바로 이 '믿음의 방식'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도 그 사랑을 이어받아, 우리 아이가 자기만의 지도를 그리며 당당히 나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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