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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Feb 24. 2024

아기 세상에 부는 바람

자동차 속도계기 (출처 : 나무위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핸들 뒤편에 있는 계기판을 보면 '속도계'가 가장 눈에 잘 들어온다. 속도계는 자동차가 시간당 얼마의 거리를 갈 수 있는 빠르기인지를 나타내는 지침이다. 가령, 어느 운전자가 '100 킬로미터' 속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후 100km 거리가 떨어진 곳에 도달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헬리콥터에도 물론 속도계가 존재한다. 단, 단위가 자동차의 그것과 다를 뿐이다. 헬리콥터를 비롯한 항공기의 속도계 단위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해리(해상 마일, Nautical mile)'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즉, 항공기가 시간당 몇 마일을 가는지의 빠르기를 측정하는 것이다. 

*참고 : 1해리 = 약 1.852km



  조종사는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속도계를 참고하여 비행한다. 관제사가 지시한 속도를 준수하기 위해, 다른 항공기들과 적절한 간격을 분리하기 위해, 연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등등 여러 이유와 목적으로 속도계를 참고하며 비행하는 것이다.



항공기 속도계기 (출처 : 나무위키)



  그렇다면 헬리콥터 조종사는 속도계가 나타내는 100마일의 속도로 1시간 동안 비행할 경우, 1시간 후에 100마일 떨어진 곳에 도착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신할 수 없음!'이다. 언뜻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종사가 속도계를 주시하며 시속 100마일의 속도를 꾸준히 유지했다면, 분명 1시간 후에는 100마일의 거리를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답은 '확신할 수 없음'이라니!?   


 

  여기서 잠시 속도계가 속도를 나타내는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의 속도계는 바퀴에 장착된 센서로 속도를 측정한다. 타이어의 회전수와 타이어의 직경을 계산하여 이를 속도계에 숫자로 나타내주는 것이다. 물론 타이어가 마모되거나, 부품이 오래될수록 약간의 기계적인 오차가 발생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이어가 굴러가는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거리와 큰 오차가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출처 : https://www.aopa.org ("HOW IT WORKS: PITOT-STATIC SYSTEM)



  그럼 헬리콥터를 비롯하여 항공기의 속도계는 어떤 측정 원리를 가지고 있을까? 항공기의 속도계는 항공기가 공기를 가르며 비행할 때, 항공기에 부딪히는 공기의 빠르기를 측정함으로써 속도를 나타낸다. 쉽게 말해, 항공기가 시속 100마일의 빠르기로 전진하면서 공기와 부딪히면 시속 100일을, 50마일의 빠르기로 전진하면서 공기와 부딪히면 50마일의 숫자를 나타내게끔 속도계가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항공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관 모양의 부품이 동체 외부로 빼꼼히 튀어나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장치를 '피토튜브'라고 부른다. 피토튜브는 정면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데, 항공기가 전진하게 되면서 맞바람을 맞을 때 이 구멍 안으로 공기가 들어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항공기의 빠르기가 증가할수록 구멍 안으로 공기가 빠르게 들어오면서 속도계에 점차 높은 숫자가 표시되는 원리인 것이다.




피토튜브 모습 (출처 : <좌> 연합뉴스 (yna.co.kr) / <우> THE GURU)



  그런데 아직까지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속도계에 100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었다는 것은 시속 100마일의 빠르기로 항공기가 전진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1시간 후에는 정확히 100마일의 거리를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의문은 공기의 움직임을 떠올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즉, 공기의 흐름, 바람이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기의 온도, 밀도 등도 고려해야 하나 내용이 난해해지는 관계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함)



  바람이 전혀 없는 무풍 상태에서 항공기가 시속 100마일의 빠르기로 공기와 부딪힌다면, 피토튜브는 공기의 빠르기를 계산하여 속도계에 100마일을 가리킬 것이다. 그렇다면 무풍 상태가 아니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시속 20마일의 속도로 불어오는 맞바람(항공기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상황에서, 시속 100마일의 빠르기로 전진한다면 피토튜브가 감지하는 공기의 빠르기는 어떻게 될까? 반대로 시속 20마일의 속도로 불어오는 뒷바람(항공기 후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비행을 한다면?



  그렇다. 항공기는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여 속도를 측정하기 때문에, 항공기가 동일한 빠르기로 전진한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어디에서, 얼마나 불어오느냐에 따라 속도계에 지시되는 속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속도계가 나타내는 숫자가 절댓값이 아니라는 사실! 조종사로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육아하는 조종사 아빠는 항공기의 속도계를 떠올리며 아가의 성장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가는 이제 생후 만 7개월의 삶을 살고 있는데, 현재 나의 모든 삶이 아가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보니 각종 SNS을 통해 7개월 아기에 관한 정보들이 눈과 귀에 쏙쏙 박힌다. 



  7개월 아기는 평균적으로 얼마나 먹고, 얼마나 자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등등의 정보를 접할 때마다, 우리 아가는 잘 먹고 있는지, 잘 자고 있는지, 이런저런 행동들은 발달 단계에 맞춰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아가의 성장에 대해 걱정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평균은 평균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겨본다.


 

  같은 7개월의 시간을 거닐고 있더라도, 어떤 아기는 거센 맞바람을 맞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어떤 아기는 고요하고 잔잔한 대기를 유유자적 떠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힘찬 뒷바람에 올라타 쌩~하니 달려 나가는 아기도 있을 것이다. 



  아기마다 누비는 상황과 조건이 다를진대, 키, 몸무게, 밥 먹는 양, 잠자는 시간, 기어 다니는 시기, 앉는 시기, 옹알이 정도 등등의 아기의 성장 속도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아기의 성장에 대한 근심·걱정·초조·불안은 잠시 내려놓는 것으로! 



  이따금씩 아가의 신생아 시절 사진을 훑어본다. 언제 이렇게 쑥 컸나 싶다. 몇 개월이 지나면, 그때도 '언제 이렇게 쑥 컸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기 세상에 부는 바람이야 어느 방향에서, 얼마나 불어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니, 지금은 그저 아가와 함께 하하 호호 웃으며 '뒹구르르' 하는 것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늘의 다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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