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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Feb 27. 2024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35)


출처 : ROTC 출신 여야 의원들, 우수 초급장교 확보 위해 머리 맞댄다 (naver.com)




  이번에는 기저귀 발진이었다. 사경 증상에 이어 장염, 잠시 한숨 돌리나 싶던 찰나에 다시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아프면서 크는 게 맞다고 하지만, 아픈 지 얼마 안 됐는데 금세 또 아프면 이거 반칙 아닌가요?'라는 하소연이 절로 나왔다. 허나, 누구를 탓하겠는가. 



  아가가 장염에서 회복된 후 본격적으로 이유식을 시작하였다. '삐뽀 삐뽀 선생님'의 이유식 책을 정독한 뒤 쌀미음부터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가던 중이었다. 쌀미음, 소고기에 이어 청경채를 먹이던 중이었는데, 하루 2-3번이던 아가의 대변 횟수가 너무 많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시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변 보는 횟수가 전혀 줄지 않았다. 변을 볼 때마다 물로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생식기 주변 살이 빨갛게 올라오더니, 엉덩이 부위까지 불그스름해지기 시작했다. 다급히 병원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발진이올시다...



  아가의 궁둥이를 닦아주는 일도, 똥 묻은 기저귀를 수십 번 갈아주는 일도, 아가를 둘러메고 병원에 다녀오는 일도 전혀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아파서 우는 아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저 안고 달래주는 것밖에 없을 때의 부모 마음이란... 아주 마음이 쓰렸다. 아주 아주 많이.



  그렇게 병원을 다녀온 뒤, 눈물을 똑똑 흘리다 잠든 아가를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거의 어느 누군가도 나처럼 쓰린 마음으로 아가를 달랬을 것이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아가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홀로 겪는 쓰라림이 아니다. 힘을 내야겠다'라고 말이다. 



  벌써 13년 전 일이다. 7월 말, 어느 습한 여름밤이었다. 저녁 늦게 논산 훈련소 연병장을 빠져나온 장교 후보생 무리들은 논산 외곽 어딘가를 빙빙 돌며 철야 행군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그 무리들 속에 나도 끼어 있었다. 



  4주간의 하계 입영 훈련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의 훈련이었기 때문에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음만은 무척 가벼웠다. 행군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까만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별을 병풍 삼아 낭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골의 여름밤은 생각에 잠기기 좋은 때라 생각하며 아름다운 추억이 쌓이는 시간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오른발, 왼발'이었다. 다른 생각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저 오른발 다음 왼발일 뿐이었다.



  시시때때로 몸에 걸치고 있는 잡동사니들을 모두 팽개치고 싶은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방탄 헬멧, 완전군장, K2 소총, 방독면에 전투화까지. '이제 못 해 먹겠다!'라는 생각에 이를 때쯤이면 어디에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10분간 휴식!" 



  완전군장은 둘러메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어깨 끈을 풀고 내려놓는 것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늦은 장마 때문인지 비는 오락가락했고, 그때마다 우의를 입기 위해 군장을 메고 푸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후드득 방탄헬멧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우의를 다시 꺼내 입을 새도 없이 빗줄기는 굵어졌다.



  통제부에서는 이미 우의를 입는 것이 늦었다고 판단했는지, 우의 착용 없이 계속 행군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빗물에 잔뜩 젖은 군장은 중력의 작용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점점 지쳐갔다. 그 와중에 전투화 속에 물이 차올랐고, 그때 처음으로 물을 차며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누구를 탓하랴, 다 내가 선택할 일인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비는 오락가락하며 그칠 줄 몰랐다. 그렇게 방탄 헬멧 끝자락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빗물로 연신 세수를 하며 발걸음을 쉼 없이 옮기고 또 옮겼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수 백 명의 동기들이 보였다. 내 뒤로도 비슷한 숫자의 동기들이 늘어서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편도 1차선의 작은 도로의 좌우로 길게 늘어선 시커먼 존재들은 그렇게 그저 아무 말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오른발, 왼발, 다시 왼발, 오른발.



  그날 함께 걸었던 이들 중 중도 포기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행군을 마치고 군장을 내던지며, 하나같이 "때려치우고 싶었다", "소총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길바닥에 드러눕고 싶었다"라며 악에 받친 말들을 쏟아내지만, 표정만큼은 참 밝아 보였다. 꿀 같은 막걸리와 볶음김치 덕분이었을까?



  그런데 만약, 컴컴한 그 길을 혼자 걸어야 했다면 끝까지 걸을 수 있었을까? '저벅저벅' 귓가를 맴도는 전우들의 발자국 소리가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함께 걷는 이들이 있다고 해서 결코 나의 고통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있기에 그저 담담히, 묵묵히, 내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인내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가를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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