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장 Mar 05. 2024

'휴직'중! 아니죠? '육아'중! 맞습니다! (36)

출처 : 노벨상 수상자 비판 이유있네… 男 육아휴직 ‘그림의 떡’-국민일보 (kmib.co.kr)



  벌써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도 7개월이 지났다.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간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비단 바쁘게 지낼 때뿐만이 아니다. 모처럼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마음먹고 푹 쉬어보려고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버리지 않던가. 육아휴직은 육아도 하면서 쉬기도 하는 시간이라 그런 것인지, 시간이 평소보다 더더욱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에게 육아휴직 중이라고 말하면 이에 대한 상대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고생이 많겠다' 혹은 '부럽다'라는 반응으로 말이다.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뉘는 이유는 '육아'와 '휴직'이라는 단어의 조합 때문이지 않나 싶다. '고생이 많겠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육아에서의 고됨, '부럽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일터에서의 고충을 떠올릴 것이라 짐작해 본다. 지금 나의 삶은 '육아'에 더 가까울까, 아니면 '휴직'에 더 가까울까?



  육아휴직 초반에는 분명 휴직에 더 가까운 생활을 했다. 아가는 잠에서 깨기 바쁘게 먹었고, 또 먹기 바쁘게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순한 아가 덕분에 엄마, 아빠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육아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아내도 출산과 동시에 3개월의 출산휴가에 돌입했는데, 함께 육아를 하다 보니 육아에 대한 부담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가가 자는 시간에 밀린 집안일을 해야 했지만, 집안일을 다 해치우고 나면 남는 시간은 곧 나의 자유 시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이 시간에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육아휴직에서 '육아'보다는 '휴직'에 더 가까운 알찬 시간을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출근해야 하는 삶을 살았다면 결코 시도조차 생각할 수 없는 아주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출산휴가가 끝나는 시점을 기준으로 나의 휴직 생활은 점점 육아 생활에 가깝게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두 명이서 나누어하던 육아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몫으로 바뀌었고, 어떻게든 에너지를 아껴가며 효율적으로 움직이고자 노력해야 했야 했다. 자연스레 휴직 생활에서 만끽하던 여유로운 일상 대부분을 덜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른 시기부터 통잠을 자주는 아가 덕분에 새벽녘에 깨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가는 마냥 신생아에 머물지 않았다. 먹는 텀이 점점 길어지면서 통잠을 자게 되었고, 통잠을 자면서 낮잠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가의 낮잠 시간은 약 6시간 정도에서 점차 줄어들어, 만 7개월을 맞이한 지금은 약 2시간 반 내외가 되었다. 아가의 낮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아가가 낮잠과 낮잠 사이에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곧 나의 '휴직 생활' 역시 이에 비례하여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뜻했다.



  석사 졸업 논문 작성은 진즉에 무기한 연기했고, 재테크 공부도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일주일에 읽던 책은 2권 이상에서 1권 이하로 줄었고, 작성하는 글의 편수도 주 3회에서 2회로 바뀌었다. 밝은 대낮에 뛰는 것은 희망 사항이 되어 버렸고, 달콤한 낮잠도 어느새 사치스러운 일로 변했다.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 등등의 가사는 몸을 고되게 하였다. 아가의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닦고 옷을 입히고 분유를 먹이고 다시 재우고 목욕시키고 등등의 육아일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나의 계획과 희망이 무너져내리는 것이었다. 자기 계발의 절호의 기회일 수 있는 시간들이 허공에 흩뿌려지는 것 같아 무척이나 속이 쓰렸다.



  그렇게 휴직생활에서 멀어지며 우울감에 젖어들 무렵, 언제부터인가 아빠만 보면 방긋방긋 웃는 아가의 미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휴직 중인 직장인'이 아니라 '육아 중인 아빠'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위기는 기회이고, 포기는 또 다른 선택의 시작점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리석게도 나는 기회를 위기라 생각했고, 선택을 포기라 여겼다. 어여쁜 아가의 미소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자기 계발의 위기라 생각했고, 아가와 바닥을 뒹구르며 추억을 만들기 위한 선택을 자기 계발의 포기로 간주했다. 아가는 아빠가 전전긍긍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래서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아빠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



  아빠도 육아휴직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지만, 아직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다행히 나는 육아휴직에 무척이나 관대한 회사를 다니고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걱정하지 않도록 해주는 든든한 아내도 있다. 아빠가 육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잠들었던 아가가 깨어 아빠를 찾는다.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휴직'모드에서 '육아'모드로 전환한다. 아가 옆에 나란히 아가와 누워 눈을 맞춘다. 같이 웃는다. 킥킥킥. 


  오늘도 '육아'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보이지 않아도, '손'은 알 수 있도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