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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May 01. 2024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46)



  육아는 무척 고된 일이다. 특히,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하지 못하는 영아를 돌보는 일의 경우, 그 고됨의 정도는 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아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도, 원인도 모른 체 칭얼대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다 보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바스러져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혹여나 돌봐야 하는 아기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육아의 어려움은 배가 된다. 아기가 몸이 좋지 않으면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자지 못하며, 깨어 있는 내내 쉼 없이 찡얼거리며 울 확률이 높다.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고역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고역인 것은 고통스러워하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면서도 달리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일 것이다. 이 무력감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육아를 더욱 고되게 만들기 십상이다.



  아기가 아픈 것도 육아를 어렵게 만드는 일이지만, 아기를 돌봐야 하는 양육자의 건강 문제는 육아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일 중 하나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먹는 것, 씻는 것, 청소하는 것 등등 그야말로 만사가 귀찮을 것이다. 그저 조용한 방안 침대에 누워 늘어지게 자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아가를 돌보고 있는 아픈 양육자에게는 방문 너머로 보이는 침대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육아하는 아빠로서 유독 지난 한 주는, 방안에 덩그러니 놓인 떡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시간이 참 많았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육아 슬럼프였던 것일까? 놓으려야 놓을 수없는 육아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육아의 고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육아... 대체 너는 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니? 



  먼저, 육아는 끊임없는 육체노동을 필요로 한다. 아가를 먹이고 재우고 돌보는 데에 많은 움직임이 수반되는 것이다. 아가는 하루에도 여러 번 쉬야를 하고 응가를 눈다. 그때마다 엉덩이를 닦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데,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아가를 들고 나르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아가가 얌전히 있어주면 참 좋을 텐데, 버둥거리는 아가에게는 '라스트 댄스'란 존재하지 않는 듯싶다.



  아가의 끼니를 챙기는 것은 그야말로 한 편의 전투를 치르는 것과 같다. 아가는 매 끼니를 결코 얌전히, 점잖이 먹지 않는다. 밥을 한입 가득 넣어 냠냠거리는 와중에도, 늘 '손'을 반찬으로 먹으려고 한다. 오른손도 입에 한 번 넣었다가, 왼손도 입에 한 번 넣었다가, 입에 다녀온 손들로 머리도 만지고 얼굴도 만지고 옷도 만지고 식탁도 만지고... 식사 다음은 늘 목욕 시간이 코스로 예약되어 있어야 한다. 식사와 목욕을 마치고 마주한 주방과 욕실의 참혹한 현장 앞에 서면... 남아 있던 힘이 쭈욱 빠진다.

  


  이외에도 육체노동은 무수히 많다. 아가가 집안 구석구석을 굴러다니는 통에 날마다 쓸고 닦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쓰레기통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아가의 기저귀로 가득 차기 때문에 쓰레기 배출도 늘 신경 써야 한다. 매일 더러워지는 아가의 옷, 양말, 침받이, 수건은 그 양이 적지 않다. 하루라도 미룰 경우 건조대의 수용 능력을 초과할 수 있다. 하루도 세탁을 거를 수 없는 이유이다. 아가 식기류, 젖병, 물병은? 이하 생략하련다. 휴...



  육체적인 피로함 못지않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것이 육아이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 쌓여만 가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육아를 날로 날로 힘겹게 만드는 주범이다.



  반복되는 육아 속 가사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육아에 필요한 가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복된다. 마치 공장 속 컨베이어 벨트가 쉼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사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들고, 이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내가 '나'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일례로, 설거지를 하다 보면 싱크대 앞 창문으로 매일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멀리 있는 아파트 숲을 바라볼 때면 '나는 이 작은 창 안에 갇힌 설거지 기계인가'라는 생각에 우울해지곤 한다.



   늘 아가에게 매여 있어야 하는 육아는 몸과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걸음마조차 어려운 아기와 외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따금씩 유모차를 밀고 아가와 함께 외출을 할 때가 있지만, 그마저도 날이 춥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집안을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아가와 함께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틀어박혀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가랑 단둘이 거실 바닥을 뒹구르다보면 몸이 찌뿌둥해지고 머리가 띵 해진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슴이 답답하며 마음까지 먹먹한 기분이 든다. 마음이 병든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점도 육아를 고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루 종일 힘들게 육아를 해도 다른 이들로부터 칭찬, 인정, 격려, 박수를 받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직장을 다녔더라면 매달 말에 입금되었을 급여도 이제 더는 구경할 수 없다. 이따금씩 내가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1도 하지 않고, 아기와 함께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식충이라는 생각 때문에 깊은 좌절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딘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육아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하루 종일 아기와 씨름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는데, 곤히 자고 있는 아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마음이 쓰리다. 내일은 더 많이 안아주겠다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막상 날이 밝으면 까맣게 잊어버린다. 다시 밤이 돌아오면 지난밤에 느꼈던 것과 똑같은 죄책감에 짓눌리고, 이러한 시간이 날마다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 없이 육아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는 조금 더 이른 나이에 선택하면 좋을 것 같다. 삭신이 쑤신다...)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고, 길고 긴 인내와 고난을 겪어야 하지만, 모든 것을 견디게 해주는 분명한 행복이 존재하기에 나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아가를 만나는 길로 걸어갈 것이다. 



  누군가 그 행복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글쎄...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지 못하는 무엇이라고 답하는 수밖에. 


  오늘도 어김없이 다짐한다. '내일은 더 많이 안아줘야지.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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