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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장 May 03. 2024

아빠는 괴롭고 외롭고 그렇다잉 (47)




에피소드 #.1 : '아빠'를 놀리면 재밌다 ?


  아내가 여행을 떠나며 자리를 비운 며칠 동안, 아가는 그동안 가뭄에 콩 나듯 입 밖으로 꺼내놓던 '아빠'라는 단어를 쉴 새 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압빠! 압---빠! 압빠빠빠빠빠빠!!". 아가의 속사포 랩을 들으며 '드디어 네 녀석이 아빠의 소중함을 알아차린 것이냐'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도, 아가는 '압뽜!'라는 소리를 쉴 새 없이 이어갔다. 다만, '아빠'를 외치면서도 엄마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몸짓을 보였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제 심심치 않게 '아빠' 소리를 듣겠구나' 싶은 안도감이 생겼을 무렵,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아빠'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 아가는 "압!"을 외치며 작은 입을 힘껏 오므리지만, '빠!' 소리를 내어놓지 않고 웃어버린다. 한두 번 정도에 그쳤다면 지금 적고 있는 에피소드의 내용이 달라졌겠지만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빠!' 없는 '압!' 소리를 듣고 있다. 


  아빠가 놀림감이 된 것이 분명하다. '네 이 녀석...!' 



에피소드 #.2 : 계속 효(孝)를 다해주면 안 되겠니? 응 ?


  일찍부터 통잠을 자며 엄마, 아빠의 수고를 덜어주었던 우리 아가. 마지막 분유를 벌컥벌컥 먹고 잠이 들면 기저귀를 갈든, 양말을 신기든, 손톱·발톱을 깎든 미동도 없이 그야말로 말캉말캉한 밀가루 반죽 상태로 아침까지 기절해 있던 아가였는데... 우리 아가가 그런 아가였는데...


  아마 엄마가 여행을 떠난 바로 당일에서부터였을 것이다. 홀로 잠자리에 누워있던 꼭두새벽, 거실 건너의 아기방에서 들리는 아가의 울음소리에 혼비백산했었던 바로 그때부터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전에도 아가는 종종 자다가 징얼거리긴 했었다. 그래도 길어봐야 1분을 넘기진 않았고, 목청 높여 울었던 적도 없었다. 마치 잠꼬대를 하듯 흐느적흐느적 거리다가 이내 '철퍼덕' 엎드려 다시 단잠에 빠져들던 아가였다. 그랬던 아가였는데...


  아가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변함없이 마지막 분유를 먹은 뒤 저녁 8시 전후에 꿈나라로 향한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전과 다르게 언제 깨서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태이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첫 번째 고비는 자정 무렵이다. 자정을 무사히 넘기면 다음 고비는 새벽 3시 무렵. 아가가 깨서 울더라도 엄마, 아빠는 무작정 달려가지 않는다. 아가 스스로 잠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아가가 울더라도 스마트폰의 베이비 캠 앱을 열고 화면 속 칭얼대는 아가를 바라보며 숨죽여 응원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는 엄마, 아빠의 응원 소리에 힘입어? 점점 울음소리를 높여간다. 마치 "여기 사장 누구야!! 당장 안 나와?! 어어?? 안 나온다고!?!?!? 어어어어!!!!?????"라고 말하는 진상 손님처럼...?


  "아가야, 이제 효(孝)는 그만하기로 한 거니...?"



에피소드 #.3 : 아빠도 문.센.에 잘 적응할 수 있겠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 아가의 문화센터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가는 추운 겨우내 아빠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게 무척 심심했을 것이다. 따뜻한 봄의 시작과 함께 우리 아가가 처음으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생각으로 아빠의 마음은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그런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문.센.에 오는 아기들 중에 아빠랑 오는 아기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는 사실을...


  역시나 아가랑 함께 참여한 수업에 다른 아빠는 없었다. 단 한 명도 말이다. 고용노동부 ‘2023년 육아 휴직자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 휴직을 한 직장인 12만 6008명 가운데 남성 비율은 28%(3만 5336명)이라고 했는데, 그 많은 아빠들은 다 어디로 갔느냔 말인가요...     


  여기저기에서 울어대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우리 아가는 의젓하게 앉아서, 가끔은 엎드려서, 때로는 이쪽·저쪽으로 기어 다니며 수업에 열중?했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동화책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고, 장난감 블록, 색색의 스카프, 여러 크기의 오볼, 무엇이든 주어지는 대로 작은 손을 조물조물 거리며 오감의 싹을 틔우는 듯 보였다. 문제는 바로 아빠... 나였다.


  강의실을 가득 채우는 동요에, 강사님의 우렁찬 목소리에, 아가와 함께 따라 해야 하는 율동에,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다른 아기들의 등장에, 무엇보다 '청일점' 외톨이 신세라... 초보 아빠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나 떨고 있니...?'


  "Well begun is half done!". 이미 절반이나 해냈기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겠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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