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던 삶에 어여쁜 아가가 찾아왔다. 그때부터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시작에 비해 늘 끝이 초라했던 삶을 살아왔던지라, 첫 글을 완성하기도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과연 언제까지 내가 계속 이 글을 끄적일 수 있을까'.
다행히 글을 쓰기 시작한 육아 라이프 초반에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난생처음 접하는 육아 라이프였기에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삶이 이어졌지만, 잘 먹고 잘 자는 아가 덕분에 틈나는 대로 한 문장씩 끄적이는 여유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아내의 배려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아가가 통잠을 자는 시기가 오기 전까지 아내는 오전 시간을, 나는 새벽 시간을 맡아서 아가를 돌보았다. 저녁을 먹고 잠시 눈을 붙였다고 해도, 깊은 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졸음을 쫓으며 깨어 있으려는 것이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시간에 글을 쓰고 있노라면 이따금씩 황홀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특히 '후드득'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키보드를 두드릴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감이 집안 전체를 감도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때도 있었고, 글감은 명확한데 노트북 화면 안에서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는 날도 많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아가의 징얼거림을 받아내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었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글을 쓰고 있나' 싶은 생각에 괴로워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냈다. 나 스스로와 약속했던 1년이라는 시간을 채웠다. 텅 빈 화면을 바라보며 끝 모를 무력감을 느끼다가도, 아가와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이야기 한편을 완성해 가는 뿌듯함을 맛보는 경험을 반복해 나갔다. 그렇게 무력감과 뿌듯함 사이를 오가며 1년의 시간을 보낸 뒤 한동안 노트북을 덮어두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왔다. 덮어두었던 노트북을 열어 이전과 같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다시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비교적 분명했다. '쓰지 않으니 남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끄적인 육아 이야기를 훑어볼 때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가의 표정이며, 냄새, 그때의 분위기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가의 첫 생일 이후 글 쓰는 일을 중단한 이후부터의 기억에 대해서는 가물가물 하다. 마치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얼마 안 남은 휴직 기간, 아가와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평생토록 간직해야겠다는 간절함을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또 어떤 반짝반짝 거리는 순간을 발견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