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록, 캡틴락 작명의 유래>
지난 수요일 2023.10.11. 시청 앞.
강원청소년동계올림픽 G-100 행사 리허설 끝나고 산책하다가 이름을 신기한 타이포그래피 그림으로 그려주는 것을 보고 작품을 구매했다.
예전에 영화 ‘서편제’에서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보고 마치 한국의 밥로스를 보는 것처럼 신기해했었다.
이름 석 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화선지에 꽃이 피듯 그림으로 승화시켜 주고 덕담까지 담아주시니, 비록 돈은 내가 냈지만, 왠지 할아버지에게 용돈 받고 칭찬받는 기분이 들었다.
韓 나라 한
炅 빛날 경
錄 기록할 록
내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가 작명소 가서 지어오신 이름이라고 한다.
그때 작명가가 “이놈은 커서 도대체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 아무튼 특이한 직업을 가질 것이다”라고 했단다. 당연히 그 시절 어르신들은 로큰롤을 잘 모르셨을 것이다.
그래서 7남매의 손주들 중 나만 돌림을 쓰지 않는다. 사촌들 이름에 ‘훈’이나 ‘창’ 자가 이름에 많이 들어가는데, 나만 특이한 사주?라고 돌림이 없다.
한경록.
나는 그런 특이한 이름이 어렸을 적부터 썩 마음에 들었다.
발음이 까다로워서인지 어렸을 때, 나의 친형은 나를 “견녹아.”라고 불렀다. 지금은 뭐라고 부르는지 기억이 안 나네. 암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이 지구에서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암튼 한경록의 친형은 재미난 요소가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이름이 ‘창’ 자 돌림이다.
스무살 즈음 연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그레이스’라는 친구랑 친해졌는데, 나보고 얘기했다.
“너는 어떻게 이름에도 록(Rock)이 들어있니? 앞으로 ‘롹’ 이라고 부를게.“
그레이스라는 친구는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오스카 와일드’를 좋아했었다. 와우교 아래 기찻길에서 ‘로맨틱한 것은 결코 죽지 않아!’ 이런 문장을 읽어 주었던 것 같다. 그때는 기차가 다녔다. 1996년.
그 뒤로 나는 누군가에게 ‘Rock’이 되었다.
그래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디가서 한자 이름 얘기할 때면 ’록‘은 로큰롤 ‘록’자라고, 한국을 빛낼 록큰롤의 별 이라고 너스레를 떨고 다녔다.
사람은 말하는 대로, 불리는 대로 가는 건지 정말 아직까지도 즐겁게 록음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좋게 여겨주고 좋게 불러주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금 혼자 있다면 스스로를 좋게 불러줘야 한다.)
그때 작명소 선생님께서 살아계신다면 백이십살쯤 되셨겠지. 지금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면 그때 자신의 작명센스에 스스로 감탄하며, 한편 이름대로 살아온 나를 대견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스물여덟살 때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캡틴하록(Captain Herlock)’ DVD 박스세트를 선물해 주셨다. 군대 휴가 나왔을 때 밤새고 봤는데, 나도 커서 하록선장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표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는데, ‘하록’, 이나 ‘한경록’이나 이름이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우주해적처럼 자유와 낭만을 모험하는 ‘캡틴경록’이 되자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새로운 낭만의 이름 ‘캡틴락’이 탄생했다.
‘록’ 어감보다는 즐거울 ‘락’의 느낌이 들어서 캡틴락으로 표기를 결정했다.
캡틴 ‘캡’, 틴에이져 ’틴‘, 즐거운 로큰롤 ’락‘
이것이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캡틴락’의 어원이다.
로큰롤을 할 때는 모험과 낭만을 사랑하는 ’캡틴락‘으로, 친형이 부를 때는 ’견녹‘이로, 일상을 살아갈 때는 세상이 붙여준 운명의 이름 ’한경록‘처럼 있는 그대로 삶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일상에서의 한경록은 ’기록할 록(錄)‘자가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아침부터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신문 활자들은 검은 사약으로 만든 잉크처럼 눈에 해롭다고 사료되어, 시력보호 차원에서 신문을 안 읽던 경록이가 신문 칼럼니스트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꿈에도 몰랐다.‘라는 뻔한 표현보다 참신한 표현이 없을까 생각하다 집착을 버렸다. 머리쓰기 귀찮다는 말.)
더 이상 쓰면 읽기도 귀찮아지실 것 같으니,
깔끔하게 접자.
#한경록 #캡틴락 #작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