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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경록 Nov 27. 2024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 시작


3년 전에 인테리어로 사둔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한정판 전집’ 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기 시작했다. 2024년의 첫눈 내리는 날 커피를 마시며 문학과 사는 이야기에 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한다. 갑자기 무언가를 막 쓰고 싶은 날이 있다.



그나저나 나는 몇 번의 첫눈을 맞을 수 있을까? 나는 철딱서니 없이 맨날 놀고 있는데, 세상은 아름답게? 변해만 간다. 시간이 나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 같다. (갑자기 인디아나 존스 보고 싶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책을 펼치자마자 “뭐야! 재밌잖아!”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카씨 집안 시작부터 개막장이다. 역시 그리스 신화부터 불륜, 막장 소재가 고전부터 지금까지 진리인 듯싶다.

특히 ‘표도르 카라마조프’ 이 사람 캐릭터가 너무 웃기(매력있)다. 욕심 많고 호색한에 광대 같고 비열한데 뭔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잔잔한 파문에 갑자기 던져진 미친 개구리처럼 여기저기 재미있는 서사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일반적인 소설이나 영화에서 라면 순수 악당 캐릭터이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 형님은 사람을 그렇게 단편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가난한 신학교 교사와 도망간 첫 번째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고, 거리로 뛰쳐나와 “이제, 해방이다.” 하며 두 손을 들었단 이야기도 있고, 어린아이처럼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다고도 전한다. 두 가지 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비록 악당일지라도 우리의 일반적인 결론보다는 한결 순박하고 단순한 일면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25p)


나는 이 부분이 좋았다.  우리는 그저 살기 위해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지 않는가? 내가 믿고 있는 선과 악이 과연 진리인가? 그럴 리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짧은 지식의 단편들일 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도덕적이라고 믿고 표현했던 말들이 우습게 느껴진다. 깊이 들어가 보면 아마도 결국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선이라고 멋들어지게 포장하며 말한 것 같다.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진 않기로 한다.

‘우린 그저 한낱 인간일 뿐이지 않은가!’라고 도스토옙스키가 깊은 위안을 주는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열대어를 키우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물 생활’을 시작했다. 구피 4마리 가지고 작은 어항에서부터 시작한 물 생활이 이제는 판이 커져서 커다란 수초 어항 4개를 꾸미게 되었다. 수초들을 키우다 보면 조명 광량 때문에 이끼가 끼게 되는데, 또 이끼를 제거하려면 생이 새우를 투입해야 한다. 생이 새우들이 커가면서 껍질을 벗으며 탈피를 하게 되는데, 살이 연해진 새우들은 동료들에게 가끔 뜯어 먹히기도 한다. 정말 개떼처럼 몰려들어 물어뜯는다. 처음에는 ‘이 잔인한 새우 녀석들. 피도 눈물도 없네.’라고 생각했지만, 한 달 정도 지켜보니 수족관이라는 세계 안에서 그렇게 생명들이 공존하며 윤회하고 있었다. 선과 악도 없이. 이 약육강식의 세계가 인간세계랑 닮은 것 같아 살짝 서글퍼지기도 하다가 그저 흘러가는구나! 하고 느껴지기도 했다.

러시아 문학은 출연진 이름이 서너개씩으로 불려서 읽기 어렵다고 하는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흐름대로 읽으면 대충 유추할 수 있어서 생각보다 읽는데 어렵지 않다고 느껴진다. 역시 대문호의 필력 아닐까?

그동안 살아온 짧은 나의 통찰로 타인과 상황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책 몇 줄 읽었다고, 갑자기 엄청 의젓해짐. 유통기한 짧음 주의!)

오늘 첫눈이 하늘에서 뿌려준 하얀 연고처럼 모든 슬픔과 아픔을 치유해 줬으면 좋겠다. 첫눈이 녹기 전까지 만이라도.

아 참!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나 도스토옙스키 읽는 사람이야!”라고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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