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대단한 성과, 그치만 국내 소비자와의 소통 품질도 신경써야 할 때
지난 6월 22일 미국 JD POWER에서 발표한 IQS(자동차 초기 품질 평가)에서 기아가 쟁쟁한 브랜드들을 제치고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별도 브랜드로 분리한 제네시스는 2위에, 현대차는 6위에 올랐습니다.
JD POWER는 세계적인 마케팅 정보 서비스 회사로서 다양한 소비자 만족도 관련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의 조사로 명성이 높으며,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중 IQS와 VDS는 미국 내 판매되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들의 품질을 가늠하는 지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IQS와 VDS 모두 자동차의 품질을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로 차종/제조사별로 100대 당 문제 발생 건수를 표시합니다. 때문에 점수는 낮을수록 좋으며, 차량 판매 대수에 관계없이 제조사별/차종별로 정규화된 비교가 가능합니다. IQS/VDS 조사 대상 브랜드는 포르쉐, 렉서스, BMW, 벤츠, 아우디, 미니, 쉐보레, 포드, 링컨, 캐딜락, 닛산, 인피니티, 뷰익, 토요타, 혼다, 아큐라, 랜드로버, 재규어, 볼보 등으로 우리가 아는 대다수의 브랜드가 평가 대상입니다.
IQS는 자동차 구매 초기를, VDS는 구매 후 3년이 지난 시점을 조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때문에 같은 해에 발표되는 IQS/VDS는 대상 차량이 다릅니다. 2017년에 발표된 IQS는 2017년 형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들을, VDS는 2014년형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입니다.
IQS는 VDS의 선행 지표로서 약 70% 정도의 강한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때문에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IQS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3년 후 VDS 역시 좋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IQS는 최근의 품질 경쟁력을, VDS는 지난 3년간 검증된 품질 경쟁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IQS/VDS의 가장 큰 공헌은 품질 평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비교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자동차 제조사들의 품질 개선을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학생들이 시험을 보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입니다.
또한 IQS/VDS 점수는 절대값보다도 다른 브랜드보다 순위가 높은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IQS/VDS 모두 만족도 조사이기 때문에 완벽히 객관적이기는 힘들지만 추이를 통해 상대적인 품질 경쟁력 비교가 가능합니다.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은 순위에 신경 쓰며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IQS와 VDS 모두 산업 평균 문제 발생 건수는 지속해서 내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즉 2017년의 소비자는 2000년의 소비자보다 더 적은 품질 문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 최근 VDS 산업 평균은 오히려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전장 장비들이 확대 장착되면서 블루투스 연결 불량, 음성 인식 에러, 내비게이션 오류, 인터페이스 불편함 등으로 인해 문제 발생 건수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그래프에서 점수는 낮을 수록 좋으며, 순위는 높을 수록 좋습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2000년부터 이 조사에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작은 처참했습니다. 현대와 기아 모두 초반에는 산업 평균을 훌쩍 넘어서는 문제 발생 건수를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품질 개선을 통해 현대기아차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초기 품질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현대는 2000년 대부터, 기아는 2010년 대부터 산업 평균보다 낮은 구매 초기 문제 발생 건수를 계속해서 기록해왔습니다. 특히 2013년부터는 산업 평균보다 꾸준히 낮아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IQS에서 기아가 2016-2017 연속해서 전체 브랜드 1위를 차지하고 현대 역시 5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닌 일반 브랜드가 IQS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1989년 토요타 이후 27년 만이라고 합니다.
IQS는 초기 신차 품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3년 후 품질로 내구성을 나타내는 VDS 일지도 모릅니다. 현대/기아차는 IQS에서의 성과에 비해 VDS에서는 꾸준히 산업 평균 이상의 문제 발생 건수를 기록해왔습니다.
때문에 초기 품질만 좋은 차가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부터는 산업 평균 밑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며 순위 역시 대폭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17년 현대 6위 / 기아 11위)
그리고 이는 앞으로 현대기아차의 VDS 순위 상승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VDS는 IQS와 3년의 시차를 두고 강한 상관관계를 가집니다. 그리고 현대와 기아의 IQS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현대 10위/기아 10위, 2014년 현대 4위/기아 6위)
즉 2017년의 VDS에서의 성과는 이미 2014년 IQS를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된 것입니다. 현대차/기아차는 2015부터 계속해서 IQS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므로 2018-2020년 VDS에서 역시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 예상됩니다.
물론 높은 IQS 순위가 그대로 높은 VDS 순위를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현대차의 경우 2006년과 2009년 IQS에서 각각 3위/4위를 기록하며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2009년/2012년 VDS에서 각각 14위/9위를 기록하며 기대보다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때문에 VDS 결과는 나와봐야 정확하게 알 것입니다.
*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현대차/기아차의 IQS/VDS에서의 선전은 도장,단차, 전장 등의 비 파워트레인 부분의 품질 퀄리티 상승에 힘입었습니다. 동력계는 업계 평균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BMW 등 독일차는 동력계의 품질 면에서 강점을 보였습니다.
현대기아차의 품질 경쟁력 향상은 일본 브랜드와 비교해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일본 브랜드, 그중 렉서스와 토요타는 수십 년 동안 IQS, VDS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일본차=품질 공식을 미국인들의 인식에 새겨 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렉서스는 최근 15년간 VDS 조사에서 2009-2011을 제외하고는 1등을 도맡아왔으며 산업 평균보다 압도적인 만족도를 보여왔습니다. (참고로 최근에는 포르쉐에 많이 따라잡혔습니다.)
하지만 렉서스/토요타와 현대기아차의 품질 경쟁력 차이가 15년 전에는 "넘사벽"이었다면 최근에는 "혹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좁혀졌습니다.
거기다가 현대기아차는 최근 제품의 품질 경쟁력 지표라고 할 수 있는 IQS에서는 이들을 넘어서기까지 했습니다. 때문에 앞으로의 VDS 결과에서는 현대기아차가 렉서스/토요타를 앞서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일본차의 품질 경쟁력을 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감안했을 때 2000년대 초반에 비해 현대기아차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IQS/VDS에서 일본차가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수십 년이므로 현대기아차가 1~2년 일본차를 제친다 하더라도 미국인들의 인식이 당장 바뀌지 않겠지만 15년 전을 생각하면 참 놀라운 발전입니다.
*최근 일본차의 IQS 순위 하락은 전장 장비의 확대 적용에 따른 결과로 풀이됩니다. 전장 장비는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일본 브랜드들은 전장 장비 확대에 소극적인 편이었다가 최근 들어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렉서스 실내 인터페이스의 불편, 조작성이 떨어지는 점도 한 몫했습니다. 현대기아차 역시 블루링크를 확대 적용하기 시작한 2010년 경 IQS 순위가 하락했습니다. 최근에는 현대기아차의 전장 품질 관리 능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최근 10년간 이렇게 IQS/VDS에서 급격히 순위가 상승한 브랜드는 드문 편입니다. 이는 현대기아차의 전반적인 품질 관리 능력이 2000년 대 초반에 비해 비약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로 보입니다.
현대기아차의 다양한 품질 관리 노하우는 최근 몇몇 미디어 발표회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기아는 2014년 쏘렌토 미디어 프리뷰를 통해 전사적인 품질 클러스터와 연계하여 부품-구조-완성차를 동시에 종합 검증이 가능한 글로벌 품질센터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글로벌 품질센터는 2014년부터 가동된 곳으로 다양한 소비자 사용 조건을 감안해 도면-실물-완성차의 품질을 육성하고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기아는 2015년 스포티지 미디어 프리뷰에서는 품질 육성 과정에서 악의 사용 조건 하 품질 검증과 전장 기기의 신뢰성 확보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오늘은 스토닉 사전 계약을 알리며 남양 연구소에서 연구 개발 단계에서 차체 품질을 확보하는 종합품질확보동을 공개했습니다.
기아는 행사를 통해 차체가 설계 도면대로 제작됐는지 확인하고 차체 품질을 점검/개선하기 위한 3D 자동 스캐닝 시스템, 차량 외관에 측정용 스티커를 붙이고 본넷, 도어, 트렁크 등의 이음새 부분의 움직임을 3D 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진동 정도를 분석할 수 있는 BSR 이음 평가장을 기자들에게 공개했습니다.
또한 공장에서는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특정 차량에서 발생한 문제 이력들을 라인부터 PDI까지 전산으로 관리하는 전자 시스템을 도입하며 생산 부문에서의 품질 경쟁력을 강화했습니다.
전반적으로 IQS와 VDS에서 주로 리포트되는 문제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피드백을 받아들여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시설/장비를 투자를 하면서 "연구 개발 - 품질 육성 - 생산" 단계에서 품질 향상을 위한 정보 공유+검증+개선 시스템이 완성됨에 따라 관리 노하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선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기아차는 품질 노하우가 향상되면서 미국 JD POWER 조사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의 AutoBild 품질 평가와 중국 IQS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기아차의 최근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차가운 편입니다.
소식이 전해진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성과를 두고 내수/수출 차별 덕분에 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아닌지, 정말 JD POWER가 공신력이 있는 게 맞는지 등 불신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IQS/VDS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로 굳이 깎아내릴 일은 아닙니다. 또한 이는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높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도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 소비자들의 만족도 평가이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의 만족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러한 성과는 연구개발/품질 육성 단계에서의 역량 발전을 기반으로 하며 이러한 역량은 지역별 차등을 두고 적용하기가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또한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종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차종이 더 많고, 기아 광주 공장이 2016년 아시아 우수 공장으로 선정되기도 한 걸로 보아 국내 공장 품질 관리 역량 역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소비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예전보다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이 공급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왜 국내 소비자들이 선뜻 응원해주기보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내는지 한번 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아무리 품질 경쟁력이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국내 소비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현대기아차의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차량 품질 경쟁력 뿐만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품질을 고민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