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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Jan 11. 2019

왜 넷플릭스인가

지난 3년을 돌아봤다. 연말 결산도 아니고, 하필 3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본 이유는 넷플릭스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한 2016년 1월 이후, 나의 소위 ‘비디오 여가 생활’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3년간 극장과 TV를 통해 접한 작품보다 넷플릭스로 본 게 더 많았다는 건 별로 놀랄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보다는 콘텐츠 만족도에 있어 후자가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뚜껑을 열어보니, 넷플릭스에는 재미없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것도 많았다. 나는 그냥 이게 핵심인 것 같다.


나같이 평범한 시청자에겐 플랫폼이니 빅데이터니 하는 것보다 콘텐츠 자체가 관심사다. 재밌는 게 얼마나 많으며, 그중 무엇이 재미있으며, 그게 왜 재미있는지가 중요하다. 다만 이런 얘기는 의미 있겠다. 그럼 우리는 재밌는 콘텐츠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그건 물론 플랫폼을 통해서다. 넷플릭스의 경우 맞춤형 추천 서비스가 종종 회자된다. 넷플릭스는 독자적인 필터링 알고리즘을 활용해 가입자 수를 늘려왔고, 콘텐츠 시청의 약 75%가 이 알고리즘 기반 추천 서비스를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한데 이게 정말 결정적이었을까?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접한 몇몇 필터링 메커니즘은 그다지 정교해 보이지 않았다. 개별 시청자의 취향을 알고리즘 몇 가지로 저격할 수 있을까. 취향은 복잡하고 복합적이며 섬세하고 게다가 계속 변한다. 적잖은 추천 서비스가 여전히 빅타이틀과 인기작 위주로 광고하듯 제공되고 있다.


오히려 넷플릭스가 플랫폼으로서 내게 어필한 부분은 더 단순한 영역에 있다. 넷플릭스에서 누린 가장 좋았던 경험은,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곤 옆 상영관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치고 빠지기’였다. 이를 가능케 한 건 별 새로울 것 없는 월정액제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결합이다. 넷플릭스가 인도하는 다양함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던 건, 5분이든 10분이든 보다가 별로다 싶으면 부담 없이 시청을 멈추고 즉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극장이나 IPTV라면 어려운 일이다. 추천 알고리즘이 사용자 앞에 여러 목록을 어지럽게 늘어놓아도, 나는 덜 혼란스럽다. 보다가 말면 그만이니까.


넷플릭스 직원들이 말하는 추천 알고리즘. 흥미로운 건, "내 취향이 아닌 프로그램을 잔뜩 추천받기보다 그냥 내가 직접 다양한 옵션으로 필터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유튜브 댓글.


하지만 넷플릭스의 성공이 플랫폼의 성공은 당연히 아니다. 새롭고 좋은 콘텐츠가 지속해서 공급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넷플릭스가 매출액의 2/3 이상을 콘텐츠에 재투자하는 이유가 그들이 유독 양질의 콘텐츠를 선호해서일까? 그건 아닐 것 같다. 그들 역시 자본주의적 경쟁이라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이상 아마존, 구글, 애플, AT&T 등과 끊임없이 싸우며 살아남아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다. 수익을 위해선 결국 좋은 콘텐츠 보유가 핵심이라는 걸. 다만 사용자에겐 콘텐츠가 쏟아져 나올수록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가 중요해진다. 일차적으론 이 역시 플랫폼 기업이 고민해야 할 문제일 텐데, 알고리즘 기반 추천 서비스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용자 입장을 중시한 콘텐츠 선별에 대한 가이드 내지 큐레이션 통로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미 사업자별 오리지널 콘텐츠 쪽으로 좋은 작품들의 제작이 몰리고 있고, 내가 보기에 넷플릭스는 그 어느 SVOD 서비스보다 다양성을 확보해가고 있다. 특히 다큐멘터리 분야는 감탄이 막 터져 나온다. 콘텐츠에 관한 이야기의 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비평의 형태든 또 다른 방식의 큐레이션이든, 보물 같은 콘텐츠를 찾아내 쉬운 언어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의 확대가 국내에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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