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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Jan 12. 2019

<부동산은 끝났다>를 읽었다

“정부가 수천억을 들여 지어야 할 아파트를 제가 대신 전세로 공급해준 거거든요. 또한 세입자에게도 적정한 전세가로 좋은 아파트를 제공한 거잖아요. 정부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거고, 세입자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겁니다.”



서점의 투자/재테크 매대 쪽을 간혹 둘러보면 온갖 요란한 카피와 색동 디자인을 내세워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를 예찬하고 부추기느라 늘 아우성이다. 물론 재테크 분야도 작지 않은 시장으로 알고 있고, 개중엔 나름 가치 있는 책들도 있을 것이다. 그중 부동산 관련 분야는 가장 다채롭고도 역동적으로 보인다. 50년 투기의 역사가 만들어낸 부동산 불패 신화는 아직 죽지 않았고, 부동산이야말로 변동성 낮은 훌륭한 투자 상품이라 여기는 이들이 여전히 많아서인 것 같다. 정책과 경험과 풍문이 뒤섞여 축적된 결과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모종의 신뢰를 굳혀왔고, 그 집단적 심리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지금과 같이 잘 유지시켜온 계면활성제다.


<부동산은 끝났다>는 위에서 말한 책들과는 물론 다르다. 2011년 출간 후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누려온 이 스테디셀러의 저자는, 그 유명한 김수현이다. 노무현 행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고, 최근 청와대 비서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됐으며, 선대인과 더불어 유독 무주택자들에게 욕을 많이도 얻어 먹은 인물이다(책 제목을 보라). 사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비교적 충실한 해석과 대안의 제시라 할 수 있지만, 맥락상 여지없이 참여정부 시절 본인이 가담한 부동산 정책에 대한 해명과 항변으로 들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한 강력한 ‘한 방’을 내놓기가 어렵다고. 왜? 그 답은 이렇게 읽힌다. 투기자들의 입장도 생각해줘야 하니까. 투기자도, 부동산 부자도 모두 우리 국민이니까. 그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오히려 부동산 투기꾼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그 뿌리까지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얼마 전 ‘정부는 민주노총만의 정부가 아니고 민변만의 정부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정부는 비정규직만의 정부도 아니고 영세자영업자만의 정부도 아니라는 말이다. 재벌들만의 정부도 아니지만 노동자들만의 정부도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는 모두의 정부인 동시에 그 누구의 정부도 아닌 것이다. 정부 관료들에겐 노동자, 빈곤층의 삶도 중요하지만 자본가, 부유층의 삶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 그러니 집값 상승을 막는 것만큼 집값 하락을 막는 것 또한 정부에겐 중요하다는 것. 요즘처럼 성장률이 낮을 땐 더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현은 이명박 정권 초기에 나타났던 부동산 시장 보합세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가격의 확실한 하락을 기대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경제의 안정성이라는 점에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그렇구나. ‘균형’을 맞출 수 있었기에 참으로 다행이구나.





GDP 대비 땅값이 네 배를 상회하는 아주 비정상적인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그러나 누군가 이득을 본 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이 도박판을 그저 중립자의 시선으로 본다는 건 정부로서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전세 제도 덕분에 은행 대출을 적게 필요로 하는 구조”라 위험 부담이 낮아 부동산 거품 붕괴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이 쓰인 당시 이미 가계 대출이 약 900조였고, 지금은 1500조를 넘어섰다. 또한 전세 제도 자체가 가격 상승만을 전제로 한 투기성 사금융의 일종이다. 저렇게 얘기할 수 있는 근거가 뭘까 궁금하다. 한편 그는 토건 경제의 위험성을 언급하면서도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따른 산업적 효과를 거부할 수 없다며 그 빤한 건설 경기 부흥 논리까지 설파한다. 투기 심리에 기댄 우려먹기식 건설 산업이 진정한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도 잘 알면서 말이다.


그는 심지어 서울에는 택지 부족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짓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수도권에 지으면 서민층의 통근 거리가 멀어질뿐더러 사회적 격리가 우려된다는 모순된 주장도 펼친다. 공공임대주택은 사실상 그의 옵션에서 아예 빠져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EBS 다큐프라임 경제대기획 ‘빚’ 편을 봤다. 재미도 없고 퀄리티도 낮은 프로그램이었지만, 300채의 아파트를 갖고 있다는 한 임대사업자의 노골적인 인터뷰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정부가 수천억을 들여 지어야 할 아파트를 제가 대신 전세로 공급해준 거거든요. 또한 세입자에게도 적정한 전세가로 좋은 아파트를 제공한 거잖아요. 정부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거고, 세입자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겁니다.” 이런 말이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세상은 누가 만든 걸까. 지금의 부동산 투자는 명백히 국가가 부추겨온 투기이고 도박이다. 그러니 개개인의 윤리나 의식을 비난할 문제도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은 애초에 부동산을 투기장으로 바라보지 못하게끔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될까. 이 책을 읽으면 더 비관하게 된다. 현 정부의 실세가 생각하는 부동산 대책이란 게 이런 거구나, 절실히 느끼게 되기에 그렇다. 부동산은 끝났다는 그 기만적인 제목에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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