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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Jan 13. 2019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를 봤다

Thompson Twins – Hold Me Now (1984)


어릴 적 게임북이 유행이었다. 그중에서도 인터랙티브 게임북, 즉 독자가 스토리의 선택권을 행사하며 상황마다 다른 전개를 따라가도록 만들어놓은 책이 인기였다. 큰 줄기는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선택과 그에 따른 결말의 재미를 부여받는 이 게임북은, 요즘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왤까? 당연히 컴퓨터 게임보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대부분의 비디오 게임은 유저 자신을 주인공에 이입해 액션 등의 방식으로 일련의 선택 행위를 지속하며 그에 대한 성과로 쾌감을 보상받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1984년 영국, ‘밴더스내치’라는 게임북에서 영감을 얻어 동명의 전자 게임을 만들고자 분투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시청자는 스테판이라는 이 청년에게 자신을 이입하도록 요구받는다. 스테판은 특정 씬마다 A 또는 B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지 앞에 놓이는데, 시청자가 마우스 클릭이나 스크린 터치로 둘 중 하나를 택하면 그에 따라 시퀀스가 달라진다. 물론 내가 내러티브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기분을 즐겁게 만끽하기에는 영화가 좀 재미없다. 기존 <블랙 미러> 시리즈가 보여준 기발한 서사나 근사한 설정, 매력적인 캐릭터 같은 것들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블랙 미러>의 컨셉에 걸맞게, 후반부에 넷플릭스라는 21세기의 매체를 80년대 배경의 영화 속으로 끌어옴으로써 지금 영상을 보고 있는 시청자(나)의 참여로 비로소 영화가 완결된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한다.


게다가 웹진 ‘Vulture’가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 자체가 넷플릭스 그리고 현재 우리가 TV를 보는 방식에 대한 메타 코멘터리(자신에 대한 해석 혹은 비판)이기도 하기에 바로 이 점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인다. 애초부터 영화가 겨누던 지점은 오락이 아니라 철학이었다고 생각하면 더욱 수긍이 간다. 다만 ‘블랙 미러’라는 이름을 달고 만든 작품치고 영화가 다소 지루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답이 뻔한 이런 선택지를 던지게 한다. 인터랙티브 영화를 볼까, 그냥 게임을 할까? (게임을 한다.) 인터랙티브 영화를 볼까, 그냥 영화를 볼까? (그냥 완결된 영화를 본다.) 하긴, 이런 물음은 처음부터 제작진의 선택지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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