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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Jan 14. 2019

살아남아 늙은 자의 부끄러움

얼마 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새해를 맞아 며칠에 걸쳐 두 노인이 출연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었다. 100세와 85세라는 고령의 지식인이지만, 둘은 서로 매우 달랐다. 김형석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꼰대 인텔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반면, 채현국은 나이 든 먹물치고 꽤 존경받을 만한 성찰과 태도를 보여주었다. 채현국 이사장의 말을 육성으로 들은 건 처음이었는데, 진행자의 다소 질 낮은 우문에도 그는 심지 있는 현답을 바로바로 꺼내놓았다. 그가 입에 올린 단어들은 노인의 것이었을지언정 내용은 여느 젊은이의 그것보다 선진적이고도 자성적이었다. 그래서 몇 부분만 글로 옮겨본다.


먼저 인상적이었던 두 가지. 1) “돈은 좋은 것일 순 없어요. 왜? 내가 가지면 남은 못 가지는 성질로 만들어놨어요. 남과 함께하지 못해요. 내가 가지면 남은 없어. 함께하는 공유로 가야 하는데, (경쟁을 통해) 혼자 벌도록 한 게 자본주의 아닙니까.” 2) “(나 역시) 모든 정권 밑에서 덜 저항했으니까 돈을 벌었고, 덜 탄로 났으니까 (가진 걸) 다 유지한 거예요. 조선 말뿐 아니라 일제시대에도, 살아남으려면 비열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해방된 지 5년 만에 동족상잔을 겪었는데, 거기서 또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나이를 먹은(비열해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살인에 연루되지 않고서(비열해지지 않고서)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정말 부끄럽디부끄러운 그 과정을 다 보내고도, 또 뻔뻔하게 옳은 소리 하고 다니는 건 실은 전부 가소로운 짓입니다. 나이 먹으면 부끄러운 줄이라도 알면서 살아야죠.”


그리고 세 번째는 “크게 세상을 보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3) “몸에 땀이 나고, 몸이 괴로운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 믿을 만할 겁니다. 가만히 생각하기보다는, 책이나 읽으며 생각하기보다는 손발을 움직거리고 몸을 움직이며 몸에서 땀이 나고 몸이 고달프게 하면서 하는 생각들, 그것이 가장 믿을 만한 생각입니다. 몸을 놀리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하는 생각들은 대개 의미 없는 생각이 많습니다. 물론 책은 봐야 하지만, 책에서는 사실 별로 힘이 안 나옵니다. 꾀만 나옵니다.” 따로 덧붙일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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