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새 울음이 많아졌다. 이전에 나는 잘 울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잘 우는 사람이 됐나 싶기도 하다. 이런 변화가 싫지는 않다. 왜냐하면 울음은 좋은 거니까. 울음이 필요할 때, 우는 것이 하나의 대응책이 될 수 있을 때 그 울음은 좋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그러니까 거의 몇 달 만에 한바탕 울었다. 슬픔으로 시작했으나 늘 그러듯 어지간한 개운함으로 마감된 울음이었다. 며칠 전부터는 몸이 아프다. 마침내 나에게도 찾아온 코로나19였다. 강렬한 통증이 두통과 오한과 고열 그리고 사정없이 후벼대는 인후통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정직히 따라가는 중이다. 이렇게나 아프다니. 코로나가 얼마나 많은 이를 죽였으며 얼마나 끔찍한 병인지 잘 안다고만 생각했던 나로선, 직접 겪어보니 질병의 가혹함뿐 아니라 나의 오만함이 또 한 번 끔찍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요샌 밤마다 몇 시간씩 책을 읽는다. 두통은 떠났지만 침을 삼키면 목구멍이 찢기듯이 아파 잠이 들 수 없어서다. 벌써 네 번째 밤이다. 근데 사람이 이렇게 잠을 못 자도 되나? 그래도 이럴 때 책이 도움이 된다. 읽을 책이 십수 권 쌓인 책상 한가운데에, 생뚱맞은 <더 크라잉 북>을 펼쳐놓고 읽는다. 제목 그대로 울음과 눈물에 관한 단상들을 엮어낸 단상집이자 한 편의 에세이인데, 한국어판의 너무 직접적인 표지 그림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새벽에 이 책을 읽고 있나. 더 울고 싶어서? 아님 더는 울 수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은 든다. 울음이 좋은 거라면, 울음에 관한 책도 좋은 책이 아닐까. 더구나 시인이 쓴 책이니까. 울음만큼은 아니어도,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울음이 주는 개운한 기분이 조금 느껴지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