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일과 삶의 경계선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올해 3월 16일에 난 출장을 가기로 했었다.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남편에게 독박 육아로 맡겨버리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남편은 고맙게도 적극 지지해주었고 2박 3일 동안 있는 컨퍼런스를 가기 위해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 모두 마친 상태였다. 남은 가족들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사실 몇 주 전부터 일이 밀리지 않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왔고 컨퍼런스가 개최되는 대학교 근처 혼자 돌아다닐 만한 곳, 맛집도 검색하며 2박 3일간 동선도 대충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호텔 근처에 마침 디즈니 스토어가 있길래 미리 아이들 선물을 사 줄 생각까지 하면서 엄마가 다 됐구나 새삼 느끼며 컴퓨터 앞에서 피식 웃기도 했었다. 3월 16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은 집에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재택근무를 시작한 첫날이었다.
나에게 2020년이 잔인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일과 삶이 뒤죽박죽 서로 뒤엉켜버려서가 아닐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 분야에서 경력 6년 차로 자리매김할 동안 난 재택근무를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대학생 때 알바를 할 때조차 재택근무는 나와는 먼 거리에 있는 존재였다. 집에서 어떻게 일을 하지. 임신과 출산 후 우리 집엔 식탁 외에는 번듯한 책상 하나조차 없었다. 내 일의 80프로는 학생들을 대면해서 상담하는 일인데 집에서 가능하기는 할까. 팀의 긴급회의로 단 며칠 만에 줌(Zoom) 계정을 설립하고 학생들과 버츄얼 미팅(virtual meeting)에 돌입했다. 당연히 버벅거렸다. 기계치인 나는 더욱더 새로운 시스템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집에는 나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나와 같이 역시 재택근무하는 남편, 그리고 바로 3일 전까지 데이케어를 다니고 있던 만 3살, 1살 된 딸 둘이 같이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일만 하기도 벅찬 상황에 손이 많이 가는 "직장 동료" 둘이 옆에 붙어 있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샌디에고 주립대학교에서 저소득층 자녀, 혹은 학사 학위가 없는 부모를 둔 1세대 대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이 학생들을 장기적으로 상담하고 캠퍼스 내 필요한 자원들과 연결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카운셀러이다. 시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하루에 대여섯 명 정도의 학생들을 만나 학업이나 진로 관련, 혹은 개인상담을 하고 그 외에도 각자 맡은 프로젝트와 프로그램들을 진행한다. 일의 특성상 심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크다. 집중해서 들어주고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열량이 소비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보니 삶이 녹록지 않다. 학생들이 대면한 여러 가지 문제나 상황들의 폭이 넓고 깊이가 깊다. 가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없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학생들과의 미팅 외에도 팀 미팅도 빈번하고 그 또한 인텐스 할 때가 많다. 영혼을 쥐어짠듯한 느낌으로 퇴근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 보니 일과 삶을 분리하는 법이 필요하다. 일에서 받은 감정을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가서는 안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내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퇴근 후에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남편이 기다린다. 올해 3월까지는 적어도 그게 쉬웠다. 퇴근 후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는 20분 남짓 운전길이 나에게는 카운셀러라는 타이틀을 벗어놓고 엄마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드라이브 중 창밖으로 빽빽이 곧게 선 야자수와 캘리포니아의 넓고 파란 하늘을 보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이후로 이게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였다. 심호흡하고 프로세스 할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그건 사치나 다름없었다. 버츄어 미팅은 매일같이 이어졌고 프로젝트와 이메일은 쌓여갔으며 아이들이 자거나 티비보는 시간을 짬 내어 셀폰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일을 이어갔다. 아이들 방, 거실, 침실까지 일이 스멀스멀 침투해왔다. 일과 삶의 바운더리가 모호해졌다. 아니 침범당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평소 나의 역량의 20프로 정도밖에 일을 할 수 없으니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내 잘못도, 아이들 잘못은 더더욱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누군가라도 손가락질하고 싶었다. 네 탓이라고.
하지만 다시 그 무너진 일과 삶의 바운더리를 세워야 했다. 물론 삶이라는 영역이 육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육아 이외에도 엄마 말고 그냥 나대로의 나, 아내, 딸, 며느리, 목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삶의 분야가 존재한다. 더 지독해져야 하는 건지, 더 느슨해져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일도 육아도 그냥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수도 없이 찾아왔지만 둘 중 하나도 그럴 수 없었다. 버텨야 했다. 그래서 나름의 룰을 세웠다. 혼자 우아하게 일을 하다가 오피스를 뒤로하고 칼퇴하는 그 순간은 더 이상 (적어도 당분간은) 없지만 마지막 미팅 후 랩탑을 덮고 아이들에게 돌아올 때만큼은 온전한 엄마가 되기로. 아무리 셀폰으로 이메일을 체크해서 밀린 이메일 답장 하나라도 끝내고 싶어도 (긴급상황을 제외하고는) 오후 4:30분에서 다음날 오전 8시까지는 넣어두기로. 일과 삶을 분리하는 '멘탈 스위치'를 끄는 연습을 어렵겠지만 해보자.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