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키우는 공간
결혼 전 친구들 세 명과 같이 아담한 투 배드룸 아파트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때를 생각해보면 방 구조는 의외로 단순했다. 큰 가구라고는 붙박이 옷장을 제외하고는 각자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그게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도 아니었는데 방에 책상이 있었다. 난 책상에 앉아 뭘 했었지.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카드를 쓰거나 그랬던 것 같다. 랩탑을 올려놓고는 영화도 봤던 것 같다. 이십 대 싱글 직장인에게 책상은 그런 존재였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방에 없으면 허전한 그런 아이. 딱 그만큼이었다. 더도 덜도 아닌.
스물다섯 살 되던 해, 남편과 결혼하고 원 배드룸 아파트에 신혼집을 꾸리면서 책상은 가져가지 않았다.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좁은 집에 새 가구들을 들이면서 낡은 책상은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아늑한 방은 퀸 배드, 나잇 스탠드, 그리고 화장대 만으로도 충분했다. 참 아이러니 한건 그 해 난 대학원을 시작했고 다시 학생이 되었었다. 하지만 다시 신혼집에 다시 책상을 들이지는 않았다. 학교 도서관, 직장에서의 내 자리, 그리고 우리 집 식탁이면 공부하기에는 무리가 없었고 왠지 신혼살림 티가나는 아기자기한 장식들 사이에 책상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쁜 신혼집에서 투박한 책상에게 내어줄 만한 공간은 없었다. 그 후 두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정착하면서도 한 번도 책상이 있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전에 살던 집주인이 남겨놓고 간 책상을 보관할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중고로 팔아버렸다. 그 뒤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거치며 책상은 더더욱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는 가구 품목이 되어버렸다. 아이들 장난감만으로도 집안이 꽉 찼다.
다시 책상이 필요하다고 처음 느낀 건 작년 초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였다. 하지만 정신없는 살림에 가구를 보태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남편이 일하는 작업실 구석 한 공간에 얹혀서 재택근무를 했다. 그렇게 버티며 작년 한 해를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아 이 집에 나만의 공간이 없구나. 넓다면 넓고 작다면 작은 우리 집에 남편만의 공간, 아이들만의 공간은 있었지만 정작 엄마인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고작 붙박이 옷장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셋방 들어 지내던 남편의 작업실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그마저 차지했던 구석에서도 (우스운 말이지만)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팬데믹 전에는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맡기고 출근해서 내 오피스 책상에 앉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마우스를 움직여 컴퓨터를 켜면 엄마로서가 아닌 나만의 하루가 시작되었고 책상에 앉아 플래너에 계획을 세우고 책을 뒤적이거나 하다 못해 커피를 꾸역꾸역 들이 삼키며 졸음과 사투를 벌이면서 일하는 것조차 지금 돌이켜보면 행복한 일상이고 그리운 사치였다. 작년에 집에서 아이들 돌봄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며 일과 삶의 바운더리가 모호해졌을 때 나를 잃어간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었다. 엄마와 아내로만 살기도 하루가 꽉 차고 버거운데 직장인으로서의 나도 왠지 포기할 수 없었다. 양쪽 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고 나 자신이 분산되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서 책상을 구입했다. 물리적인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조각으로 분산된 나를 다시 하나의 나로 복원시키는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작은 책상을 하나 구입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색상, 물건들로 책상을 셋업 했다. 아이들에게도 부탁했다. 여기는 맘즈 스페이스 (mom's space)이니 여기는 엄마만 앉을 수 있다고.
그렇게 마련된 소소한 나만의 공간에 앉아 일을 하고 플래너를 쓰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신다. 집중력과 의욕 모두 상승이다. 엄마와 아내, 그리고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걷어내고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느낌이다. 신기하다. 물리적 공간을 마련했는데 정서적인 마음의 공간도 함께 생겼다. 물론 꼭 책상이 있어야지만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공간에 앉아있는 동안만큼은 내가 가진 역할들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가 쉬워진다. 불투명한 안개를 걷어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날 위해 무얼 해야 할지 조금 더 선명히 보인다. 그게 이유다. 엄마에게도 책상이 꼭 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