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중독에서 해방되다.

사실은 라식수술 후기입니다만.

by Caraish

병원 검진을 할 때 가족력을 묻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쩔 수 없이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체질과 아빠의 기질을 물려받은 나는 엄마의 시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안경,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워낙 시력이 좋지 않았던 엄마와 언니는 차례대로 라식수술, 그리고 라섹수술을 받았고 나 또한 기회가 되면 시술을 받고 싶었지만 해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또 최근 몇 년간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점차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물러났다. 그러던 중 여러 가지 상황이 지금 이 시기가 라식수술을 받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뒷받침해주었고 지난주에 드디어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수술 대에서 내려오면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처럼 세상이 환하게 보일 줄 알았던 나는 다소 실망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실망보다는 고통과 혼란에 가까웠다. 수술 직후에는 시술 중 나를 엄습했던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로비로 나왔고 집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약기운에 바로 잠이 들었다. 수술 후 회복을 고려해 난 아이들과 남편을 집에 두고 시댁에 혼자 와 있었는데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은 게 역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잠결에 문득문득 들었다.


수술 후 여러 가지 주의 사항과 당부 사항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당연히 실외에서는 햇빛, 그리고 실내에서는 컴퓨터와 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스크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었다. 사실 작년 팬데믹을 시작으로 재택근무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크린 사용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있었다. 일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아이패드로 드라마 시청시간은 팬데믹 중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고 핸드폰으로는 내 생활 전부가 손가락 몇 개로 왔다 갔다 했다. 중요한 이메일이 없는 줄 알면서도 이메일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갈 곳도 없으면서 날씨는 하루에 몇 번도 더 체크하고, 굳이 살 게 없으면서 이미 오더 한 물품의 딜리버리 상태를 체크한다는 이유로 아마존 앱을 나도 모르게 또 꾸욱 누르고. 핸드폰이 눈에 띄지 않으면 불안했다. 아니, 핸드폰을 언제라도 손에 쥘 수 있는 거리에 두고 모든 알림을 클리어해야지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중독이나 다름없었다. 이 중에 가장 심한 중독은 인스타그램이었다. 왜 그리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에 내 시간을 쏟게 되는지. 지인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서 무얼 하며 주말을 보내는 게 언제부터 나에게 그렇게도 중요한 일이었던가. 언제부터 내가 먹는 것, 아이들과 나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인정받는 것이, 그리고 알게 모르게 나의 삶을 남들과 비교하며 내가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는 것이 나에게 이리도 중요해졌을까. 심각했다.


물론 다른 편에 서 있는 또 다른 나는 이렇게 반론할 수 있겠다. 팬데믹으로 가족들과 친구들, 소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만한 소통의 장이 어디 있겠는가. 굳이 안부를 일일이 묻지 않아도 근황을 알 수 있고 소식을 전하거나 들을 수 있고 누구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그 엄마는 아이와 어떤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아이들에게 어떤 간식을 먹이는지 기웃거리며 보고 배울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워킹맘으로서 항상 목마르고 간절한 엄마들의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다. 가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힘들 때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올리는 글에 달리는 댓글들, 올라가는 '라이크', 진심 어린 메시지들 하나하나가 그렇게 따뜻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아. 내 시간만 멈춘 게 아니구나. 나만 지금 이 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구나. 특히 힘들었던 작년 한 해,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그렇게 위안을 받고 위안을 주는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은 밸런스가 중요한 법.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 가끔 나 자신을 중독의 현장에서 발견할 때면 섬뜩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을 깨기 위해 몸을 뒤척거리며 핸드폰을 쥐고 아무 생각 없이 누르는 인스타그램 버튼, 아이들과 놀아줄 때조차 눈을 마주치며 집중해서 놀아주기보다는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를 보고 있는 나 자신, 그리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분명 머리로는 알면서 마음으로는 비교의식에 사로 잡힌 나를 보며 깨달았다. 분명 과했다.


라식 수술을 하고 처음 며칠간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핸드폰을 거의 볼 수 조차 없었다. 처음엔 눈을 잘 쉬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잘 몰랐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니 금단 현상이 나타났다. 이상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하는 중 틈틈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아이들을 재우며 밤에 누워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지 않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반강제적으로 스크린 타임을 반납하니 처음엔 뭘 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금세 알게 되었다. 이 미니멀하고 소소한 삶이 축복이라는 것을. 나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고 감정을 되물을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대신 대화의 질을 높이고 나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기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쉼'이 '쉼'다워졌다고나 할까. 사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이 해방 기간을 오래 누리고 버텨볼까 한다. 그동안 내 마음을 다시 차곡차곡 쌓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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