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물류팀은 어떻게 '비전'을 만들까
월말엔 늘 일이 몰린다. 팀에서 한 달 간 사용한 비용, 출고량, 인사관리, 익월 목표 등을 문서로 정리해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달엔 어떤 일을 했고, 다음 달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작성하는 것은 매번 고민스럽다. 출고 물량이 몰리는 달이나 예약판매가 진행되는 달에는 제품포장과 출고에 대부분의 자원을 활용하기 때문에 무엇을 했다고 적을 게 마땅히 없다. 그렇다고 ‘특이사항 없음’이라고 적고 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달도 그랬다. 팀원 몇이 퇴사했고 새로운 인원을 뽑느라 인사업무가 중점적으로 진행된 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업무는 대부분 차순위로 밀렸고, 물류팀에서도 매일의 입출고와 재고 관리 외에는 문서로 작성할 만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이달의 업무 및 다음 달 계획을 전달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작성했다.
그런데 보고서를 제출한 뒤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외부 미팅을 끝내고 정신없이 본사로 들어갔고, 공유한 내용에 대한 면담이 시작됐다. 경영진은 이번 달에 허술하게 기록된 물류팀의 계획에 대해 질문했고, 필자는 새로운 직원의 적응과 비용절감과 같은 다소 뻔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전달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될 쯤 경영진이 갑작스럽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팀장으로서 생각하는 비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이 길에 들어선 뒤 수백 번 수천 번 생각했고 나름의 답을 내린 줄로만 알았던 질문이었는데, 정작 누군가가 물어보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뜻밖이었다. 필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한 달의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하고 본사를 빠져나왔다.
비전은 무엇인가. 목표와 동의어인가. 물류의 목표는 대개 ‘시간과 비용의 최적화’로 귀결된다. 전통물류건 신물류건 마찬가지다. 육송·철송·해운 등 다루는 범위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필자 또한 그런 목표를 추구해왔다. 물론 처음 팀을 세팅할 때는 일간 처리량에 모든 기준을 맞추고 변동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조금 더 무게를 뒀다. 그러나 이후에는 전체적인 시간 및 비용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를 주로 했다.
물론 목표는 조금씩 변하기도 했다. 사람과 비용, 시간과 규모 등이 변하면서 1년 전 계획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다른 팀의 성장과 신제품 출시, 회사 기조와 시장 환경의 변화 등 외부적인 요인도 목표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때마다 재설정한 목표를 따라 잘 걸어왔다. 비용관리도 잘 했고 서비스 평가지표도 긍정적이었다. 본사도 물류팀을 큰 문제없이 잘 운영되는 좋은 팀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목표에 잘 다가서고 있음에도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가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목표와 비전은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령 내일 당장 물류팀이 10배로 커진다고 해보자. 우선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감당해낼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팀 개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만, 역량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선배나 외부 컨설팅의 도움을 받아 답을 내릴 수 있다. 이 답은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했고, 무엇이 변화했으며, 목표치에 도달하는 데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한 ‘가시성’을 부여한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것만 잘 따라가면 우리는 목표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비전은 이와 다르다. 비전은 ‘~한 물류를 하고 싶다’거나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식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비용처럼 가시적이지 않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나와 같은 길을 그대로 간 사람은 한 명도 없기에 도움을 구할 선배나 외부 컨설팅도 없다.
많은 기업이 이런 비전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목표만 잘 이뤄도 기업이 문제없이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필자가 지금까지 인사업무를 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과 가장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점이 바로 ‘비전의 부재’이다. 과거엔 필자도 목표만 잘 이뤄내면 모든 것이 ‘OK’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본 결과, 비전 없는 목표만으로는 팀과 사람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 수 없다.
요컨대 좋은 목표만으로는 위대해질 수 없다. 목표는 아무리 잘 관리된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된다. 그것은 역량이나 열정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매출이 일정 정도를 넘으면 성장의 속도가 더뎌진다. 그러면 물류 역시 현 상황에 최적화된 업무 이상의 것을 진행하려 하지 않고 확장되지 못 한다. 이렇듯 물류팀 업무가 정체기에 들어서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비용의 투자마저 보류되기 때문에 각 개인은 늘 하던 고정업무에 묶이게 되고 결국 슬럼프에 빠진다. 이커머스 업체에서 이런 슬럼프는 매우 위험하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이 연봉이나 커리어, 시간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포기하고 대신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이 멈추는 순간, 그것은 아무리 잘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좋음(Good)’일 뿐이다. ‘특별함(Special)’이나 ‘위대함(Great)’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목표가 ‘택배 및 부자재 비용절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회사의 출고량이 초기 수준이라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택배나 부자재 단가를 인하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물동량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물량이 꾸준히 증가해서 택배 및 부자재 단가를 지속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면? 그리고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모든 비용을 최저로 낮춘다면?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목표보다 중요한 것은 비전이다. 이커머스 물류 업체에서 평균 근속 년수가 3년이 채 안 되는 이유는, 그리고 물류의 새로움이 식상함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목표에 밀려 잊혀가는 비전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비전은 방향성을 제시한다. 로켓에 아무리 좋은 추진체(목표)를 달아놓는다 한들 그게 반대 방향으로 설치돼 있다면 로켓이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물류의 비전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필자 역시 혁신이나 비전을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히 이야기하자면, 기업과 기업 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정보공유가 비전을 찾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다른 업체 관계자들과 만날 때마다 늘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아무리 영세한 커머스업체일지라도 하나의 열쇠는 반드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100개의 자물쇠가 주어졌다고 해보자. 대부분의 업체는 이 100개의 자물쇠를 열기 위해 99개의 열쇠를 만들고 그 열쇠를 자물쇠에 넣어 돌려보는 비효율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이러한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열쇠를 모아 우리에게 주어진 100가지 자물쇠를 모두 열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같은 이커머스 업체일지라도 다루는 제품의 특성에 따라 최적화된 물류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업 간에 제품의 특성과 관련된 노하우와 관리기법, WMS 등에 대한 정보 공유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것을 몽땅 공유해버리면 소중한 무기를 잃어버리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이커머스라도 판매 카테고리가 다르면 정보를 공유하는 게 물류의 측면에서 결코 제로섬이 되지 않는다. 당신의 열쇠로 누군가의 자물쇠를 열어준다 한들 그 열쇠가 사라지거나 효용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많은 기업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음에도, 아직 그것들이 제대로 사용되지 못 하는 것도 기업 간 정보공유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업별 입출고 및 재고관리와 제품 관련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물류현장에선 비용의 혁신이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합쳐지고 때로는 쪼개지면서 미처 보지 못 했던 새로운 영역이 발견될 것이다.
이 또한 비용 측면의 ‘목표’에 지나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상품 샘플을 예로 들어보자. 샘플은 기업에 비용 측면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더욱이 물류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아이템도 아니었다. 그러나 샘플이 하나의 아이템이 되고, 그것을 고도화하여 고객의 성향에 맞춰 제작하고 발송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고객만족이라는 하나의 ‘비전’을 추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요는, 커머스라는 사막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비전이라는 나침반이 필요하며 ‘새로움’이 그 비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움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즉 모두가 황금 열쇠를 하나씩은 쥐고 있다.
필자가 본지를 통해 ‘커머스 생존기’를 기고한 지도 반년이 넘었다. 필자가 실제 커머스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 지는 만으로 2년이 지났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생존할지, 아니면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필자가 물류기업이 아닌 이곳에서 물류의 미래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가 추구해야할 바는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것이다. 필자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나름 명확해졌다. 그게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이곳에서 했던 고민들이 더 많은 시도와 변화를 이끄는 촉매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