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곡성은 누가 듣나
상편에 이어서 영화의 절정을 향해 가는 영화 중반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악마에게 전염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드러기 증세가 일어나고 세상에서는 독버섯을 잘못 먹었다고 판단합니다. 독버섯들은 대게 아름답고 예쁘게 생겼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독을 뿜어내는 것들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쉴 새 없이 얘기하는 '현혹'을 상징하는 것이죠. 세상은 피해자들을 독버섯에 현혹되었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세상 역시 독버섯으로 위장한 악마에 현혹된 것 뿐.
효진이 처음으로 악귀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효진은 TV를 켜놓고 숙제를 하고 있는데, 다름아닌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는 장면입니다. 괜히 이 장면을 틀어놓진 않았겠죠? 악마의 낚시법은 사자의 사냥법과 닮아 있습니다. 일단 혼자서 사냥하지 않죠. 이는 곧 조력자가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자는 무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고요하게 접근합니다. 무리에서 떨어진 동물이나, 가장 약해보이는 동물에게 말이죠. 악마가 여자에게 접근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성경 창세기에서도 사탄이 먼저 접근한 것은 여자인 하와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달려들면 먹잇감은 당연히 반대편으로 사력을 다해 도망가겠죠?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이미 숫사자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먹잇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덫을 향해 뛰어드는 것이죠. 동물의 왕국을 틀어 놓은 것은 악마의 사냥법 등 많은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의 사냥장면은 효진이 가위로 옆집 할머니를 찔렀을 때도 마찬가지로 TV에 틀어져 있기도 합니다.
일약 유행어가 된 이 명대사는 종구가 효진에게 일본인을 만났냐고 질문하면서 중요한 문제니까 대답하라고 했을 때, 효진이 외치는 대사입니다.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것일까요? 일본인과 효진의 접촉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대로 보는 인간들에게 던지는 본질이 더 중요하다는 악마의 반문이 아닐까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에 떠나보내고 슬퍼할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악마의 비웃음. 뭐가 중요한지 우리가 다 알면 뭐 실패하는인생이 있겠습니까...
종구와 이삼이 다시 외지인의 집을 찾았을 때, 외지인은 푹 삶은 닭발을 먹고 있었습니다. 많은 음식 중 왜 닭발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이어지는 굿판에서 수마리의 닭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습니다. 의식을 할 때 다수의 닭을 죽여야 하니 당연히 닭발이 많을 수 밖에 없겠죠. 그런데 닭발은 옛날에는 왕과 귀족이 먹는 굉장히 고급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역사책 여씨춘추에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제나라 왕이 닭을 먹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한 번에 닭발 수 천개를 먹은 후에야 만족을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요, 닭발 하나를 먹는데에는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고 닭발로 포만감을 느낄만큼 먹으려면 많은 닭은 물론이고, 고도의 집중력도 필요하겠죠. 또한 옛날 사람들은 가는 두 발로 온 몸을 지탱하는 닭발에는 좋은 기운이 많이 들어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바로 고급음식으로 여겨진 까닭이기도 합니다. 외지인이 굿의식을 할때면 체력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게 될 것이고,이를 보충하기 위해 닭발을 먹었다고 볼 수 있고 또한 악마로 거듭나기 위한 수련의 과정에서 이같은 수고와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구가 외지인의 집에 쳐들어가 신당을 박살내고 검은 개마저도 죽여버립니다. 그런데 외지인의 검은 개는 곡성같은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개로써, 지옥의본거지인 외지인의 집을 지키는 수호견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개를 죽인 것은 인간 종구의 악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고였겠죠. 외지인이 피해자들의 사진과 물건을 싸그리 없앤 것은 최대한 오래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기 위함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사탄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갖가지 모습으로 위장하고 노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죠. 죽어버린 검은 개를 뜯어먹는 것은 다름 아닌 까마귀이고, 까마귀는 다시 한 번 악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날 종구집 대문에는 내장까지 파헤쳐진 흑염소가 피를 흘린채 걸려져 있게 되죠. 외지인의 신당에 염소 해골이 있던 걸기억하시겠죠? 당연히 외지인의 경고입니다. 종구는 뜬금없이 중풍증상을 보이고 가족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사이 효진이 옆집 할머니를 가위로 잔혹하게 찌르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일종의 경고이자 미끼였던 셈이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광(황정민)이 등장합니다. 장모가 친한 할매한테 주선해달라고 해서 어렵고 비싸게 모신 용한 무당인데요, 이 친한 할매는 고기집 마담을 데리고일광에게 찾아왔을 때 잠깐 등장하는 할머니가 아닌가 생각되고 또 한명의 추종자나 하수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영화에서 가장 헷갈리는 인물이 바로 이 일광인데요, 감독님께서도 직접 밝히셨지만 처음부터 악한 존재로 스토리를 전개했다고 합니다. 일광이 외지인과 한 패라고 하는 것보다는악마 또는 외지인의 또 다른 추종자, 수련자 내지 제자라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예고편에서도 나오지만 일광의 차는 우측통행이 아닌 일본처럼 좌측주행을 하고, 외지인과 마찬가지로 일본식 속옷을 입고 있구요. 영화 마지막에는 외지인처럼 카메라로 사진을 찍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봤을 때는 살굿을 벌이다 실패해서 역살을 맞고 변절된 것이 아닐까 의심을 했었는데요, 마지막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진들을 보고 처음부터 악한 존재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진들은 그전부터 그런 행동을 해왔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일광 역시 악한 존재라는 증거는 이 외에도 몇가지가 더 있습니다. 무명과 마주쳤을 때 피를 흘리며 구토를 하고 벌벌 떠는 장면은 영화에서 그 동안 일광이 보여준 무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죠. 아직 영력이 외지인보다 부족한 일광은 무명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악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 역시 일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현혹’이라는 단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아닐까요?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살굿씬입니다. 일광이 종구에게 일본인 허주를 죽이는 살굿을 날릴테니 부정탈 짓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죠. 살굿 당일 종구집에서 굿판 준비가 한창일 때 외지인 역시 시장에서 흑계를 사서 굿을 준비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여기서 현혹되고 말았습니다. 황정민의 귀신들린듯한 굿판 연기에 진짜 외지인을 죽이려는 정의의 무당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막바지에 굿판을 엎어버리는 종구가 어이없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을 보면서 이 굿이 효진을 죽이기 위한 살굿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교차편집되어 나오는 외지인의 굿은 산 속 트럭에 죽어있는 박춘배를 하수인 좀비로 만들기 위한 굿이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일광은 흰닭을 쓰는데 이는 살아있는 효진을 죽이기 위함이고 외지인은 검은닭을 쓰는데 죽어있는 박춘배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으로 서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색의 닭을 쓰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일광이 넘어뜨리는 정승은 보통 마을의 수호신인데 여기에 못을 박는다는 것은 효진의 집, 나아가 마을의 결계를 무너뜨리려는 의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종구가 훼방을 놓는 바람에 결국 무위로 돌아가게 되지만요. 일광의 굿이 효진을 향한 살굿이라는 유력한 단서로는 효진이 눈을 가리며 괴로워 한다는 것도 있습니다. 눈은 벌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부끄럼을 알게 되었고,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어버린 적도 있죠. 또한 삼손은 눈을 빼버리는 고문을 당하고,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대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않다가 눈이 멀어버립니다. 현혹에 가장 민감한 신체부위는 다름아닌 눈이고 효진이 눈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효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외지인은 굿을 하는 도중 계속 피를 흘리며 힘들어하다가 결국 신당을 빠져나와 방 문턱에서 쓰러지고 말죠. 교차편집으로 관객들을 굉장한 혼란을 주는 이 장면은 외지인이 무엇때문에 쓰러졌는지 쉽게 알 수가 없지만 크게 2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광과 외지인의 굿은 그 궤를 같이 해야 하는데 일광의 굿이 어그러지면서 외지인의 굿에도 안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고, 외지인이 쓰러진 후 집앞에 나타난 무명을 보고 아무런 저항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무명이 훼방을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굿에는 엄청난 영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무명에게 일종의 기습공격을 받아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던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후에 외지인이 절벽에서 떨어진 후 무명을 발견하고 쫓아가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무명과 충분히 영력으로 싸워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여전히 저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의문점은 왜 어린 효진을 상대하는데 이런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필요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전까지의 피해자들은 이렇게 힘든 작업이 필요하지 않았고, 심지어 성복의 가족 역시 어느새 파멸로 이어졌었으니까요. 또한 살굿이 제대로 성공했다면 효진이 죽어버리는데, 이는 일가족을 몰살시키는 악마의 전략과도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종구가 가져간 효진의 실내화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숙주의 사물을 도로 가져감으로 인해서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자 직접 죽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효진을 죽인 후에는 아마도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살굿씬은 모든 배우가 엄청난 연기력을 뿜어냅니다. 일광의 롱테이크와 외지인과의 교차편집은 긴장감을 배가 시키죠. 숨어있는 메타포들을 찾아내는 것과 별개로 한국영화사에서 회고될만한 명장면임은 확실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밖에 없는데요, 염소는 성경에서 지옥에 갈 인간들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마태복음에서 하나님께서 오른편에는 양, 왼편에는 염소를 두고 자신의 명대로 하지 않는다면 염소 쪽에서 서게 되고 저주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양은 당연히 어린 양 구세주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고, 염소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죠.
좀비는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공격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외지인이 쓰러졌다 일어나서 황급히 박춘배를 확인하러 나서는 장면은 전날 의식을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수호견인 검은 개가 죽어버린 상황에서 또 다른 더 강력한 수호견이 필요했을테고, 바로 그 역할을 할 존재로 박춘배를 선택했던 겁니다. 확실하게 마무리가 되었다면 박춘배를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었을텐데 아마도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확인차 갔던 것이겠죠. 그리고 종구와 친구들과 좀비춘배가 대치하는 장면에서도 숨죽여 봐야 했던 것은 완전히 지배하지 못한 좀비가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일겁니다. 좀비가 종구를 공격하려는 순간, 갑자기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버리는데요, 죽어있던 목숨을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술을 걸어놓은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삼은 종구를 데리고 신부님에게 가지만 신부는 어떻게 외지인이 악마라고 확신하느냐며 병원의 처방대로 따르라고 합니다. 악마의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하고 치밀하게 발전해가는데, 현대 종교는 사실 큰 발전이 없습니다. 현혹당할 수 있는 환경은 점점 많아지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 기준마저도 우리는 종교생활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 하고 그저 예전처럼 기도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감독은 현대의학이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부분에 대해 종교로서의 책임, 나아가 수동적인 신에게 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느냐 반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한 씬일수도 있겠지만 종구와 신부의 대화에는 영화의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중편은 일광의 등장, 외지인과 종구의 갈등, 살굿을 중심으로 한번 살펴봤습니다.
이제 하편을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