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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멜팝콘 Jun 04. 2016

<곡성>(하).9

우리의 곡성은 누가 듣나

중편에 이어서 관객을 정말 혼돈으로 이끌어가는 종반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21. 도망가는 외지인

춘배좀비가 죽고나서 종구와 친구들은 숨어있던 외지인을 발견하고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산을 달려다니는 외지인의 체력은 도저히 할아버지의 체력이 아니죠. 심지어 절벽에 매달리기까지 하는 초인적인 힘을 볼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풀린 것은 아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외지인이 도대체 왜 한낱 인간들에게 그렇게 쫓겨갔는지 생각해보자면, 전날 입은 내상이 아직 다 완치되지 않았거나 수련 중에는 접촉을 피해야 한다거나 요괴의 모습일때만 남성과 접촉할 수 있다는 등의 규칙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절벽에서 떨어진 외지인은 아파하고, 눈물도 흘리는데요, 선하든 악하든 신적인 존재들도 감정이 있습니다. 쿠니무라 준은 나홍진 감독이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서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눈물을 보이라고 했다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이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외지인이 눈물을 흘리게 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의 하나님, 그리스/로마 신화 등 우리의 신들도 희로애락이 있고 보다 사실적이고 진짜 있을법한 초월적 존재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아닐까요?


22. 산에서 추락해 죽어버리는 외지인

절벽에서 떨어진 외지인은 무명을 보고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외지인은 산에서 종구의 트럭으로 떨어지죠. 원래 여기에서 무명과 외지인의 영력싸움을 촬영했는데,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해 편집과정에서 뺐다고 합니다. 어쨋건 무명이 낚시를 했고, 외지인이 당했다고 볼 수 있겠죠. 종구와 친구들은 외지인이 죽었다고 생각해 시신을 유기하지만 산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명의 표정은 오히려 더 심각해집니다. 외지인이 죽지 않을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겁니다. 이 이후로 외지인은 엔딩까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23. 이 버럭지 같은 놈이 미끼를 삼켜부렀구나

종구와 친구들이 외지인의 시신을 유기하는 순간, 일광은 자신의 집에서 “이 버럭지 같은 놈이 미끼를 삼켜부렀구나.” 라며 의미심장한 대사를 합니다. 이 버럭지 같은 놈은 바로 종구를 얘기하는 것이겠죠. 외지인의 집에 쳐들어와 깽판을 놓고 이토록 격렬하게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인간은 처음이었을테니까요. 일광이 말한 미끼라는 것은 외지인이 죽었다고 생각하게 한 것과 효진의 증상이 일시적으로 완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효진은 퇴원을 해 집에서 잠을 자게 되고 종구와 가족들은 한시름 덜게 됩니다. 가족들에겐 사실 이젠 집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닌 것이죠.

하지만 일광을 믿지 못하는 종구는 일광의 모든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급하게 종구의 집으로 찾아온 일광은 종구의 집을 지키고 있던 무명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쫓기다시피 자신의 사당으로 도망쳐 옵니다.


24. 성복 일가족 몰살

좀비에게 얼굴을 물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삼은 삼촌 성복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갑니다. 성복의 가족들은 다 죽어있고, 성복만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채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종구와 효진에게만 집중해 왔지만 악마의 악행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세상에 외지인 같은 악마는 한명이 아니니까요. 영화에서도 일광이라는 또 다른 악의 인물이 있고, 성경에서는 지혜의 천사장이었던 루시엘이 하나님께 대적하다 떨어져 사탄이 되었고, 그를 따르는 추종자만 수천 수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인간은 악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위해 온 힘을 집중하고 안간힘을 쓰지만 악마의 입장에선 우린 한없이 나약하단 것일까요? 


25. 일광도사, 까마귀, 헛것

사당으로 도망쳐 온 일광의 집안으로 까마귀가 떨어져 죽습니다. 일광은 급하게 사당을 비운 후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새똥? 나방?처럼 보이는 헛것에 씌여 사고가 날 뻔 하고 차를 돌려 곡성으로 향합니다. 까마귀를 죽인 것은 무명의 경고이며, 헛것은 악마의 협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명에게 겁을 먹고 도망치는데, 그보다 더 두려운 존재의 협박으로 다시 무명이 있는 곡성으로 향한다는 것이 가장 논리적인 것 같습니다. 일광은 종구에게 대실수를 했다며, 무명이 귀신이지 외지인은 자신처럼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26. 무명과 종구의 마지막 대화

집에 돌아와 사라진 효진을 찾아 마을을 헤매이던 종구는 불난 집 앞에서 자신에게 돌을 던지던 무명을 마주칩니다. 살굿이 영화의 첫번째 클라이막스라면 이 대화씬은 두번째 클라이막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긴박합니다. 무명은 가족을 살리려면 지금 집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외지인은 죽지 않았고 한꺼번에 다 죽이려고 종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덫을 쳐 놨으니 닭이 세 번 울 때까지만 기다리고 하죠. 덫은 무엇일까요? 보통 금어초를 덫이라고들 말하는데, 금어초가 수호의 결계로서 기능하는지 악마를 끌어들기이 위한 미끼로 작용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악마에게 몰살당한 집에는 금어초가 시들어 해골의 모습을 드러내죠. 덫이라 함은 잡기 위함이 목적인데, 악마가 종구의 집에 왔을 때 어떤 방법으로 외지인을 잡을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습니다. 저는 덫을 쳐 놨다는 무명의 말은 금어초 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려보낸 효진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덫은 효진, 종구 등 가족을 살리기 위한 덫이라기 보다는 종구 가족의 희생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무명이 악마를 잡기 위한 덫인것 같습니다.

왜 하필 자기 딸이냐는 질문에 의심하고 결국 죽였기 때문이라는 무명의 대답은 자신의 말을 의심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가인이 인류의 첫 살인을 저지른 것은 모두 의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루살렘에 예수가 등장했을 때도 대부분이 믿지 못 했고, 유대인은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닭이 세 번 울 때까지만 기다리라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장면을 모티브로 가져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믿음을 져버렸지만, 종구가 세 번 모두 무명을 믿었더라면 정말 가족에게 구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종구가 무명의 말대로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저는 단순히 가족생존이 목적이 아닌 악마를 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닭이 세 번 울면 사실상 날이 밝기 시작하는 것이고 악마의 힘은 약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때까지 종구를 통해 시간을 벌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27. 악마와 마주하는 이삼

이삼은 십자가를 손에 쥐고 악마를 찾아 산을 오릅니다. 성경 속 유대인 제사장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를 찾아가 거듭나라는 해답을 얻고 니고데모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뀝니다. 이삼 역시 마음 한켠에는 의심을, 한켠에는 확신을 가진 채 악마를 찾아가게 되고, 산 속 동굴에서 무언가 의식을 치루고 있던 외지인을 마주하게 됩니다. 확신을 확인하러 온 이삼을 비웃으며 무슨 말을 해도 이삼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거라고 하죠. 손바닥의 못자국을 보여주면서 성경구절을 읊조리는 부분은 소름이 돋더군요. 이는 외지인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 영생을 사시죠. 악마 역시 외지인의 육체가 죽으면서 영으로서 부활한 셈이죠. 내려가는 것은 네 마음이 아니라는 악마 앞에서 이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카메라를 꺼내 이삼을 찍는 외지인의 모습은 진짜 뿔달리고 빨간 눈을 가진 악마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소름돋은 웃음을 날립니다. 이로써 외지인은 악마로 거듭나게 되고, 이삼은 ‘주’를 찾지만 아마도 이삼은 동굴을 나가지 못하겠죠.


28. 무명이 소지한 피해자 물품

무명은 박춘배의 옷을 입고 있기도 하고, 말미엔 술집마담의 가디건을 걸치고 있습니다. 닭이 두 번 울고 난 후엔 땅에 떨어진 효진이의 머리핀을 보고 종구는 결국 돌아서 버립니다. 효진이의 실내화때문에 크게 데인 적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악마와 무명 모두 인간의 물건을 매개체로 사용하지만, 살인과 수호라는 서로 다른 목적 때문입니다. 무명 역시 종구를 직접 붙잡으며 실체가 있는 현신으로서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귀신이라고 해서 다 투과하거나 만질 수 없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의 시대는 분명 아닙니다. <곡성> 이전부터 악령이나 귀신이 씌여 실제 인간과 접촉하는 장면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봐 왔습니다. 성경에서 역시 하나님이 모습을 바꾼 장면들이 있구요, 만질 수 있는데, 귀신일까? 신일까? 아닐까? 에 현혹되기엔 이미 관객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고, 성경구절까지 차용하면서까지 이 부분에 힘을 많이 실어준 것 또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을 겁니다.


29. 종구가족의 비참한 최후

뒤늦게 집으로 돌아간 종구는 아내와 장모가 처참하게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효진은 오열하는 아버지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죠. 장모가 악마와 한통속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혼란을 주기 위한 장치로 원래부터 촬영을 하지 않았는지, 편집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죽어갈 때 옆에 시신이 하나 더 있는 걸로 봐서 그런 의견은 너무 앞서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구가 내뱉는 마지막 대사는

“괜찮아, 우리 효진이. 아빠 경찰인거 알지? 아빠가 다 해결할겨. 아빠가.”입니다. 이걸 끝으로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관객들 반응이 다들 응? 뭥미? 이게 끝? 이런 반응들이죠. 그래서 찝찝하다는 이야기도 많구요. 저도 찝찝하긴 합니다만…누구도 종구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우리입니다. 무명이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악마를 물리쳤으면 어땠을까요? 아마 무명은 악마를 쫓을 수는 있을지언정 잡지는 못 했을 겁니다. 악이란 그런거니까요. 그리고 또 무명으로 대변되는 신은 우리를 지켜볼 뿐입니다. 여긴 인간의 세상이니까요. 하나님은 예수가 죽는 것 또한 바라만 보셨습니다. 예수가 죽고 비와 폭풍으로 위로했을 뿐이죠.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된 겁니다. 흐느끼며 오열하는 곡성은 나약하고 외로운 우리 인간들이 떠난 이와 남은 이 모두를 위로하는 방법입니다.


30. 포토그래퍼 일광

이른 아침 효진의 집에 도착한 일광은 효진을 지나쳐 시신의 사진을 찍습니다. 외지인과 마찬가지로 수동카메라죠. 카메라를 수동식으로 설정한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외지인과 일광은 모두 과거부터 존재해 온 악의 역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 속에서 불을 때서 사는 외지인, 여전히 폴더폰을 사용하는 일광이 모두 수동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을 2번 찍기 때문에 종구와 아내만 찍은 것이 아니냐, 또 다시 장모 악인설이 나오는데, 종구는 아직 죽지도 않았고 심지어 악에 직접적으로 감염이 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찍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언급한 일본식 주행, 속옷에 더해 카메라와 수많은 사진까지 등장하니 일광의 정체도 확실해졌죠.


마치며...

<곡성>은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해석의 다양성을 위해 너무 많은 장치들을 넣었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지만 마치 논리적으로 수습이 안되는 느낌은 분명있습니다. 해석의 자유에 맡긴다고는 하지만 <곡성>은 열린 결말은 아니라는 점에서 단서간의 유기성이나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들도 있구요. 하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스릴러와 오컬트를 잘 버무렸고, 156분이라는 짧지 않는 런닝타임에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게 합니다. 관객을 끝까지 현혹시키면서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게 한 것도 큰 장점입니다.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지만 모든 영화에는 감독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홍진 감독이 낚시에는 목표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한번쯤은 꼭 봤으면 하는 영화였습니다.


<곡성>

지극히 개인적인 프리뷰로서 ★★★★

(5개: 재미+작품성=어머, 이건 꼭 봐야해!)

(4개: 작품성or재미=딱히 싫어하는 취향이 아니라면 보면 좋을 영화)

(3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킬링타임용)

(2개: 취향을 심하게 타고, 굳이 안 봐도 될...)

(1개: 왜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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