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냄새가 멈춰지지 않는다.사실 생각해보면감정은 쌓아둬서 좋을 게 없다.무엇이라도 해야 했다.여자는 관리사무소에 미리 이야기해놓았던 일을하려고 한다. 곧결심을 한 듯직접손글씨로 쓴 종이를 집어 들었다. 곤히 잠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다녀올게"작게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안녕하세요. 104호입니다.저희 집에 33일 된 신생아가 있습니다. 환풍구를 통해 저희집화장실로 담배 냄새가 들어와 고통스럽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외부로 나가서 흡연해주시길부탁드립니다.'
여자는엘리베이터에종이를붙이고곧장 집으로돌아온다. 방금붙인 종이 한 장이 과연 어떤 날갯짓으로 돌아올까. 자신이 붙인 그 종이 위에 누군가 험한 말을 적어 놓으면 어떡하나. 또 누군가 신생아 울음소리 먼저 조심해 달라고 적어 놓으면 어떡하나. 여자는 그것과 관련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어떤 민원을 받은 적도 없지만앞선걱정이 된다. 이런 걸로도 맘충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적잖이불안하기도 하다.
결혼 후첫 신혼집은30년 된 오래된 아파트전세였다. 산 밑 오래된 아파트는 겨울이 추웠다. 여자는 신혼 6개월쯤 첫 임신이 되었고 여자의 임신을 알게 된 남편은 대출을 받아 필로티형 구조 A동 36세대 104호로 이사를 준비했다.산후조리원을 퇴소하고 지금의 집으로 돌아온 지 2주가 조금 지났다. 여자에게 집은다정한 공간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에 생각지 못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신생아 아기를 목욕시켜야 하는데 화장실에서 하루 종일 담배 냄새가 나는것이다. 여자의 집은 필로티 2층이라 아랫집은 아예 없다. 1층 바깥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확인을 한 것이었다.윗집인가 싶어 남편이 직접 찾아가 부탁을 했지만 본인은 집에서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한다. 윗집이 아니면 각 세대가 환풍구로 연결되어 있어 담배 냄새가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인데 어느집인지 찾을 방법이 없다. 쌓인 마음들이 복잡해진다. 여자는순간 화가 난다. 신생아 아기에게 고스란히 가는 간접흡연의 피해가 화가 나는 것이다. 나의 화가 특별한 것인가. 누군가의 인정을 구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요구이지 않나.
여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누군지만 알아도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그 사람의 취미 생활인가. 아니면그 사람의 유일한 낙인가. 그 사람의 사적 영역이기도 하지만공동주택이기도 한 것 아닌가.환풍기를 계속해서 틀어나도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여자는 맑은 하늘 뭉게뭉게 떠있는 구름도 싫어진다. 구름을 담배 연기로 연관 지어 생각할 정도면 신경증인가.익숙해져서 포기하는 게 빠른 결론인가. 스물여덟 여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자는 지금 잠깐의 쉼표가 필요하다. 남편은 다가오는 휴가 날에 담배 냄새가 날 때마다 집집마다 찾아가 보겠다고 한다. 남편의 애씀이 고맙다.
저녁시간 여자는 성냥팔이 소녀가 되어 있었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여자는 성냥갑 몇 개가 든 바구니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성냥을 팔고 있었다."아니오. 우리는 더 필요하지 않아요"현관문을 열어준 여자는 어색한 듯 급하게 문을 닫는다. 닫히는 문 사이로 어두운 거실에 생일인 듯 고깔모자를 쓴 초등학생남자아이와 아이의 아빠가 보였다. 남자아이는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려고 준비 중이었다. 여자는 다시 어둡고 축축한 복도를 지나 또 다른 집에 다다른다. 여자가 누른 초인종 소리에 무표정한 남자가 현관문을 연다. "아니오. 우리는 더 필요하지 않아요" 여자는 이번에도 닫히는 문 사이로 아름다운 광경을 본다. 환한 거실과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아이 엄마의 뒷모습 그리고양갈래로 머리를 예쁘게 묶은 유치원생 여자 아이가 아빠 뒤에서 미소 지으며 여자를 바라본다. "아니오. 우리는 더 필요하지 않아요" 세 번째 집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결혼한 듯한 신혼부부가 함께 나왔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싱그럽게 웃었다.그러나성냥 파는 소녀에게는 빠르게 웃음을 거두며문을 닫았다.
어린 소녀가 된 여자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소녀에게성냥을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엾은 여자! 아니 가엾은 소녀! 마침내 마지막으로 한집만이남았다. 여자는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문을 열어준 남자는 성냥 바구니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성냥갑 한 개를 집어 들었다.그리고는성냥 한 개비를 꺼내'치지직 챡!" 성냥을 켠다. 성냥은 이내 곧 작은 불빛을 낸다.드디어 찾았다. 여자는 놀라움에 눈이 커지고 무언가 말을 하려 하지만 입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말을 해야 해!' 여자의의지는 그녀의몸에 잔뜩 힘을 주게 만들었다. 여자는 이른 새벽 그만 꿈에서 깼다.
성냥을 파는 이유를 설명했을 때 그 남자가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내며 "내 집에서 내가 피는데. 무슨 상관이냐!" 라고 소리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결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자를 바라보며 "애쓰셨네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온기를 주는 따뜻한 말을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자신의 주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자신의 주변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이 되면 좋겠다. 안데르센의 진짜 성냥팔이 소녀도 주변에그런 이웃이 있었다면, 별똥별이 떨어져 내리는것을 바라만보듯. 지독히도 추운 겨울밤에 아무런도움도받지 못한 채 얼어 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주 잠깐 꿈에서 성냥팔이 소녀가 되었던 여자는 어떨까. 여자가 엘리베이터 안에 붙인 종이 한 장은 정말 어떤 날갯짓으로 올까. 그것을 얼굴몇번 본 적 없는, 정확히 누군지 모르는 어느 한 이웃이 붙인 '경고장' 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고심 끝에이웃이 나에게 어떤 작은 '기대' 를 표현한 것이다. 그것을 읽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이 오다가다 이웃을 만났을 때 뻣뻣하게 얼은 듯 이상하고 어색한 포즈를 취하는 일이 덜할 텐데 말이다.
다음날 여자는 신생아 B형 간염 2차 예방접종을 위해 집 근처 보건소를 방문했다. 접수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다. 할머니 한분이 여자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보며 '첫 아이냐고. 장한일 했다고. 제일 예쁠 때라고. 그 예쁜 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고. 지금 많이 예뻐해줘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어린 시절,여자가 소녀였을 때 여자의 외할머니가 소녀에게 보여주시던 얼굴이었다. 여자의 마음에 박혔던얼음 가시가 사르르 녹으며 눈물이 났다. 여자는 꼬낏꼬낏했던 기분이 환해지며 경쾌하게 날오로는 듯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