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리티 바이츠>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스물세 살이 되면 뭔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어> <네가 스물세 살까지 되어 있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스물세 살이 되고, 또 스물세 살을 지나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다. 뭐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 몇 살이어야지 어른이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암튼 20대 초반인 현재의 나는 돈과 집, 차 그리고 안정된 직업 등 여러 꼬리표가 붙어야 행복한 게 아닐까, 더 근사한 어른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네가 스물세 살까지 되어 있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야>라는 대사에 마음이 덜컥해졌으니 말이다.
이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겉으로 예쁘고 그런 거 아무 소용없어.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멋지게 하고 사는 게 정말 멋진 거지>라고 말이다. 더 근사한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아마도 그런 것, 일 것이다.
내가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였다면, 동구처럼 나는 아마 그러지 못했었을 것이다. 처음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평범하게 꼭 남들만큼 살 순 없을까. 더러운 호모 새끼라, 놀림받을까 입이나 제대로 벙긋할 수 있었을까. 방황하기에도 정신없었을 그 나이에 말이다.
그런데 영화 속 동구는 오직 여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 동구에게 여자가 되려면 수술비가 필요하고, 수술비를 위해 고등부 씨름대회 우승자 장학금 500만 원이 딱이었으리라. 그런데 하필 남학생들과 웃통 벗고 맨 살 부대껴야 하는 씨름이라니. 마돈나가 되기 위해, 천하장사부터 되어야 하는 오동구라.
아무래도 근래에 본 영화 중에서 소재가 가장 독특한 것 같다. 암튼 우리의 오동구로 나오는 류덕환이라는 신인 배우는 뭐 두말할 것도 없고, <그렇구나 무서운 쿰을 꾸었구나> 하고 어색한 발음 날리는 일본어 선생으로 나오는 초난강이라는 일본 배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커피프린스의 이언을 보는 것도 즐겁고, 타짜의 아귀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번 연기도 너무 좋았던 동구의 아버지로 나온 김윤식을 보는 것도 꽤 의미 있었다.
그리고 상대 팀이 아닌 같은 팀 선배와의 결승전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입술 주위 점에 난 한 가닥 털에 웃겨 중심을 잃은 순간, 뒤집기로 결국 우승하게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전개에 말도 안 되는 결말을 짓고 있는 영화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안심이 된다.
세상에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 있을 것이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남자가 되고 싶은 소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심리학적으로 볼 때, 1. 신체적으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혼돈이 없으나 2. 신체적으로 주어진 성(gender)이 잘못된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는 신체를 되찾으려는 강한 열망을 갖는 것, 그런 일군의 사람들을 <트랜스 젠더 transgender>라 구분하여 설명되며, 이러한 <성 정체성 장애>는 생물학적인 요인이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부모, 자녀 관계에서 느끼는 갈등과 이를 해결하려는 무의식적 욕구와 관련 있다고 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도 늘 술을 달고 살며, 폭력적이고 두려운 존재인 아버지로 인해 남성이란 곧 공격성, 폭력성으로 동일시되고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남성의 역할을 동일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연약해 보이지만 가출 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공부를 하며 나름대로 만족하며 열심히 사는 엄마가 동구의 눈에는 더 강하고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던, 소년인 동구가 여자가 되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된 것이 그것이 어떠한 선택의 결과가 아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도 모르게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이라면 그것이 또 바뀌어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도 그 탓을 동구에게 물어야 하나.
동성애자 혹은 성전환자를 찬성한다느니, 반대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주변에서 간혹 듣고 한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 걸까. 본질적으로 이것은 어떤 성이나 성전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용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가급적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 때 가장 행복하니깐 말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지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면 괴롭다는데 그걸 막아 무얼 할까 싶다. 나는 동구에게 <트랜스젠더인 것은 괜찮아,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아픈 것도 너무 잘 참아서 아픈지도 잘 모르게 하면, 그러면 안 되는 것 같다. 너무 잘 참으면 당연한 줄 아니깐. 서걱거리는 아픔을 어느 정도는 드러내고 소리 질러야 무심한 사람들이 돌아봐준다는 거 말이다.
영화, 예술의 여러 가지 중요한 사회적 역할들 중에는 이렇게 우리가 채 살피지 못한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싶다. 부디 그 힘을 잃지 말고 계속된 발전을 거듭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끝으로, 동구가 늘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던, 마돈나의 노래. 마돈나 특유의 콧소리로 매혹적인 춤을 추며, <라이크 어 버진 like a virgin>을 부르는, 흠- 지금의 마돈나를 가능하게 한 노래라 하던데 여자인 내가 봐도 역시 섹시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