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EV5, 중국산 배터리 탑재 결정
기아의 차세대 준중형 전기 SUV ‘EV5’가 국내 출시를 앞두고 중국 CATL의 삼원계(NCM) 배터리를 탑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고성능 NCM 배터리는 국산 제품(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을 사용하는 것이 업계의 일종의 관례처럼 여겨져 왔던 만큼, 이번 결정은 전기차 시장 내 치열한 가격 경쟁의 흐름을 상징하는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기아 EV5는 기존 코나 일렉트릭이나 니로 EV와는 다른 차원의 포지셔닝을 가진 모델이다. 이들 소형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를 적용했던 현대차그룹은 가격 민감도가 높은 세그먼트에 한해 제한적으로 중국산 부품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EV5는 소형차가 아니라,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전략적 핵심 모델로 꼽히는 준중형급 SUV다. 해당 차종에 중국산 NCM 배터리를 적용한 것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보조금 축소와 수요 둔화라는 복합 위기에 대응해 차량 가격을 낮추려는 기아의 절박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국산 배터리 업계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CATL은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으로, 기아와의 협력을 통해 향후 중형·대형 전기차에도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가격 경쟁력 확보를 넘어서,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과 원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전기차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터리 공급처를 국내에만 한정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미국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규제로 인해 여전히 국산 배터리 3사와의 긴밀한 협력 체제를 유지하겠지만, 국내와 기타 시장에서는 중국산 배터리 활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기아 EV5의 배터리 전략은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 '국적'보다 성능과 가격, 안전성 등 실질적인 소비자 가치가 우선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고성능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경쟁이 격화되며, 제조사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배터리 선택의 기준을 이념이나 이미지에만 두기 어렵게 된 것이다.
실제로 EV5는 합리적인 가격 책정을 통해 전기차 구매 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핵심 열쇠가 바로 CATL 배터리다.
수냉식 배터리 기술과 글로벌 인증을 갖춘 CATL의 제품은 기술력 측면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를 확보한 상태다.
국산 배터리 업체에는 다소 불리한 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CATL 배터리의 도입은 EV5의 가격 인하 가능성을 열어주며, 보조금 축소 이후에도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기아는 이번 EV5를 통해 "배터리의 국적보다 소비자의 가치가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이는 향후 전기차 시장에서 기술력, 품질, 가격의 종합적 경쟁이 더욱 중요해질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