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카드를 알고 있는가? 그냥 일반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아니냐고? 놉. 이건 쓸 수 있는 곳이 한정된 ‘특별한’ 카드다. 인천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안 쓰면 손해라는 지역화폐, 인천e음카드.
몇 년 전, 친구가 갑자기 성남사랑상품권이 생겼는데 어떻게 써야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생소하고 어렴풋한 이미지(전통시장에서 쓰는 상품권 같은..)로만 떠올리던 ‘지역화폐’라는 게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보급될지. 그리고, 이렇게 ‘핫’해질지.
2019년, 인천러 필수카드 인천e음카드는 물론 고양페이, 광명사랑화페, 양평통보… 이름도 디자인도 다양한 지역화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역화폐는 이름 그대로 ‘특정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다. 즉 인천e음카드는 인천광역시에서만, 고양페이는 고양시에서만 쓸 수 있다. 전국에서 통용되는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이와 병행하며 또 하나의 지불결제수단으로 사용되는 대안화폐/보완화폐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학술적으로 지역화폐는 매우 다양한 범주를 포괄한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로,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그러나 요즘 뜨고 있는 지역화폐는 좀 더 좁은 개념으로, 대부분 지자체가 발행하는 할인 상품권 성격의 화폐를 의미한다.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흐름에 발맞춰, 지역화폐 역시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기본적인 종이 상품권부터 IC카드 형태, 스마트폰을 이용한 QR결제 지원까지!
특히 주목할 만한 건 카드형 지역화폐다. 올해 발행된 지역화폐는 카드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천e음카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화폐는 ‘코나아이’ 기반으로 운영되는데, 충전식 선불카드인 코나카드를 이용한다. 이름 그대로, 앱을 통해 계좌를 연결하고 미리 카드에 돈을 충전한 뒤 사용하면 된다.
따라서 카드 단말기가 설치된 곳이면서 해당 지역화폐와 가맹점 계약을 체결한 곳이면 어디서든 편리하게 쓸 수 있다. 즉 카드형 지역화폐는 그 지역에 실재하는 화폐라기보다, 사실상 일반 법정화폐(돈)를 특정 지역에서 편하게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매개에 가깝다.
지난 9월 기준 인천e음카드의 가입자 수가 무려 86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굳이, 그 지역에서만 써야 하는 지역화폐를 “안 쓰면 손해”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다른 결제수단보다 더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화폐의 가장 큰 특징은 6%의 인센티브다. 상품권은 액면 금액에서 6%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카드형 지역화폐는 충전 금액의 6%를 인센티브로 받거나, 충전한 카드로 결제했을 때 6%를 캐시백 해준다. 지역화폐 출시 기념, 명절 기념 등 한시적으로 10% 이상의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각 지자체별로 월 충전 한도, 캐시백 한도 등이 다르다.)
연회비도, 전월실적도 없는 카드인데 언제 어디에서 쓰든 6%라니. 피킹률 무엇… 체크카드와 비교했을 때는 당연하고, 웬만한 신용카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을 혜택이다.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생활권이 그쪽이라면 괜찮고, 오히려 소액을 결제해도 쓰는만큼 6%가 따라오니 소비 금액이 적어도 이득인 것이다.
지역화폐 발행 지역은 2018년 66곳에서 2019년 177곳으로 1년 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과연 ‘핫템’임을 입증하는 수치. 그렇다면 범용성/편의성 모두 부족한 이런 화폐를 지자체들에서 너도나도 만드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목적은 ‘지역경제 활성화’다. 쉽게 말해 그 지역 내에서 더 많은 돈이 돌게 만드는 것이다.
지역화폐는 해당 지역의 특정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는데, 대형마트, 백화점, 직영 프랜차이즈 등은 가맹점에서 제외된다. 지역 내 소상공인을 돕고 전통시장·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다.
Editor's TALK
‘지역화폐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준 최근 사례가 있다. 2018년, 군산조선소와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었다. 군산시는 ‘군산사랑상품권’을 발행하여 적극적으로 사용을 권장했고, 이후 지역화폐 가맹점을 전수조사한 결과 약 66%가 매출이 올랐다고 답했다. 군산사랑상품권은 최단기간 내 최대 발행 기록을 세우며 지역화폐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떠올랐다.
음, 목적은 OK. 하지만 상품권이든 카드든 지역화폐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예산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100여 곳이 넘는 지자체가 발행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뭘까? 어떻게 6% 인센티브라는 혜택이 가능할까? 이 지역화폐 ‘열풍’의 중심에는 중앙정부의 지원이 있다.
올해 초 정부는 지역화폐 예상 판매액의 4%를 국비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금액으로는 약 800억원. 그런데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자체가 많아지자 예상 발행 규모를 2조3천억원으로 수정, 약 92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고 +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아이템인데다 + 중앙정부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는 사업이니, 솔깃할 수밖에 없다. 새로 만드는 지역화폐를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명칭을 공모하는 곳도 많다.
올해 상반기까지 발행된 지역화폐 발행액이 이미 작년 전체 발행액보다 무려 350%나 많다. 이 열풍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각 지역경제가 서로서로 살아나는 이상적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인천e음카드는 성공한 모델로 언급되며 많은 지자체가 벤치마킹했다. 그러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지역화폐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도 함께 보여줬다.
e음카드의 인기가 치솟자 각 자치군구에서는 추가 혜택을 덧붙여 카드를 출시했다. 서로e음, 연수e음, 미추홀e음… (한시적으로) 8%, 10%, 11%… “특정 지역구에서는 더 캐시백!” 기초단체 간 캐시백율 확대 경쟁이 과열됐고, 결국 지급액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3-4개월만에 혜택을 축소했다.
결제액이 늘어날수록 캐시백 지급에 필요한 예산도 증가한다. 결국 발행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세금이 투입된다는 의미이며 지자체의 재정 부담도 무거워진다. 그러나 현재 지역화폐 발행이 실제로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그 성과를 검증하는 시스템은 없다. 투입되는 세금을 고려했을 때의 성과가 있는가? 투입 대비 효과가 적다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므로.
지역화폐는 어떤 형태든 발행비∙운영비 등 불가피하게 초기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발행에 따르는 수요가 없다면, 지역 주민들이 이 화폐를 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중앙정부의 예산을 받아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라는 이유나 선심성 정책으로 지역화폐를 도입한다면, 불필요한 재정이 아깝게 소모될 수 있다.
신나게 많은 양을 발행했는데 소비되지 않는다면 지자체는 당연히 사람들이 쓰도록 유도할 것이다.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거나, 단체 구매 협약을 맺는 등의 방식으로. 그러나 주민들의 자발적 유통이 없는 지역화폐가 본래 목표(=지역경제 활성화)를 달성할 수 있을까?
‘다른 지역에서 다 하니까’에 휩쓸려 충분한 검토 없이 도입한 지역화폐의 최후는 불 보듯 뻔하다. 지역 주민들의 사용과 참여가 필수적인만큼, 논의 단계부터 지역경제 및 주민들의 특성을 잘 고려해야 한다. 발행을 위한 발행이 아닌, 실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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