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의 꿈은 어디까지 왔을까

[Career] 컨설팅에서 빅테크까지 우선 도전해보는 이야기

by 카디엠


어느덧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을사년이라는데, 역사책에서 자주 보던 '을사'란 단어에 제법 반갑고도

60년, 120년이 참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생각을 한다.


내 나이는 아직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나

어느덧 연도가 1990년, 2000년, 2010년에서 2020년대까지 십의 자리수가 넘어가는 속도가 점차 빠르게 느껴진다.


새해 첫 글을 쓸 생각을 하면서 어떤 내용을 쓰고 싶은가 생각했을 때

그래도 희망차게 시작하고자 하는 내 낙관주의 한 조각이 "꿈"이라는 주제를 택하게 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사실 꿈이라는 단어는 어릴때는 참 구체적이었고 뚜렷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수록 추상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어릴 때 누군가가 꿈을 물으면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으로 치환해서 답변했던 것 같다.


6세의 나는 '슈퍼마켓 주인'을 꿈꿨다. 이유는 제법 단순하다. 슈퍼에 가면 내가 원하는 모든 간식이 있으니까. 그 주인이 되면 내가 원하는 간식을 원하는대로 먹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


초등학생의 나는 '약사'를 꿈꿨다. 슈퍼마켓과 유사한 이유인데,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는 약을 먹으면 낫는걸 알아서인지 만병통치약을 척척 건네는 약사분들이 멋져보였던 것 같다.

- 지금 생각하면 멋진 꿈들인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나는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시인'을 꿈꿨다. 당당하게 장래희망에도 적었더랬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이러한 줄글도 겨우 써내리는, 삭막한 마음을 가진 직장인이지만, 당시에는 시 한편에 웃고 우는 감성 충만한 소녀였다. 나름 백일장에서도 장원도 받고, 교육청 대회에서도 수상하는 미래의 시인... 지금은 지하철 승강장에 붙어있는 시민들의 시만 경우 읽어 내리는 소시민이 되었지만.


그러다 어느때부터인가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장래희망이 만들어져갔다. 6학년쯤엔 사춘기가 일찍 온 나는, 현실적인 꿈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당시의 꿈은 '교사' 였었다. 교사로 적어 내는 장래희망 조사표를 본 어머니는 꽤 안심한 눈치였다.




이미 과거 되어버린 누군가의 꿈에는 별 관심 없을수도 있지만, 또 내 꿈이 누군가의 꿈이나 반면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저 이어가 본다.




집 근처 일반 중학교에 진학한 나는, 지역 내 수학영재원에 대뜸 합격해버리고, (지금은 어떻게 썼는지 그저 신기한) 수학과 음악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꿈도 "수학 교수"로 바꼈는데, 당시에는 교수와 교사 차이도 잘 몰랐던 것 같다. 다만 당시에 대학교 부설 영재원에 다녀서 인지,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교수님이 꽤 멋져보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무슨 연유인지 '법조인'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원래 공부를 제법 하던 내가, 전교 1-2등을 하면서 주변 가족과 사람들의 기대감에 맞는 꿈을 떠올린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 부조리에 분노할 수 있는 자아를 갖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법조인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찾아보는데, 그 당시쯤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했고 (갤럭시 초기 모델로 검색했던 것 같다) 외국어고등학교 졸업생 중 법조인 비중이 제일 높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했고, 그날부터 외국어고등학교를 꿈꾸기 시작했다.


마침 중학교 2학년때 선택 과목으로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국영수가 아니라서 부담도 덜하다는 것도 한 몫했다)


외국어고등학교 중국어과에 진학하고 1학년 때 들뜬 마음으로 진로탐색 체험을 지방 법원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소규모로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아마 졸업생이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판사 3분이 계셨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재판을 본 이후부터, 나는 법조인의 꿈을 접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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