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위로하기 위해 쓰는 글
이전 글들을 차마 갈무리하기도 전에
또 다른 주제의 글을 쓰게 된 것은
어제 교회에 다녀온 이후였다.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와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 설교를 듣고 나니
내 삶 속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공허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서점에 가면 #소확행 #아보하 #니체
허무주의적인 제목들이 참 많이 보인다.
금번에 읽었던 트렌드 코리아 2025의 한 키워드도 아주 보통의 하루였던 것 같은데. (2024년이었나)
경기가 안 좋아서 인지.
개인주의적인 삶이 만연해서 인지.
코로나가 장기화되어서 인지.
다들 이전보다도 삶의 역치점을 낮추고
살아가기보다는 살아내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사실 나 또한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즈음
인생 처음으로 불안과 번아웃에 휩싸여
상담도 받기 시작하고 지금까지도 도움을 받고 있다.
아주 보통의 하루는 사소한 하루에도 기쁨을 느끼는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일 수 있으나
적어도 내게는, 아주 보통의 하루라도 보내고 싶은
치열한 사투로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나도 종종 하는 말이 이전에는 행복이란 즐거운 일들이 가득한 거였다면, 이제는 불행이 없는 삶이라고 말한다.
이전 글들에서 신나게 내가 이뤄온 성취와 직업관을 설파했지만 사실 나 또한 그늘이 숨겨져 있다.
작년에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갑자기 암 진단을 받으시고, 나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했을 때,
마치 트럭을 들어 올리는 모성애처럼 모든 걸 감당했다.
매일 새벽 2시까지 일하다가도, 아침마다 대형병원들에 진료취소 자리가 있는지 문의하고.
보험 증권을 읽어가며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출장 중에도 매주 본가에 들러서 어머니를 위로했다.
감사하게도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고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다시 병들기 시작했다.
하루 건너 하루 맥주를 마시고
나 또한 위경련이나 신경성 두통에 시달렸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던지...
그럼에도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은
내가 이뤄낼 수 있는 꿈과 희망이 아닌
그분이 계시기에 꿀 수 있는 꿈을 달라고.
다시 아침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겠다고.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지 못해도 주님과 동행했듯이 그 동행의 기쁨을 달라고.
다시 한번 나를 다잡고 살아가야겠다.
한주을 살아갈 모두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