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을 타이핑하며
엄마의 글을 타이핑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엄마의 시간을 옮겨 적는 것이다.
낡은 종이에 쓰인 문장을 다시 옮기는 일인데도
이상하게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숙연해지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모니터 속 문장들 사이에서
내 나이보다 더 어렸을 엄마,
순희가 걸어 나온다.
주홍빛 홍시처럼
수줍은 듯 살풋 웃는 얼굴로.
아, 엄마도 소녀였지.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딸이기 전에 한 명의 독자가 된다.
글은 늘 그렇게
말해지지 못한 시간을 데리고 온다.
내 엄마의 글에는
그 시절의 숨결과 망설임,
그리고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마음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장 하나를 옮길 때마다
나는 엄마의 젊은 날,
순희의 날을 훔쳐보는 기분이 된다.
동시에
이 섬세한 언어의 결 사이에서
튀어 오르는 감정들 속에서
아! 나 자신을 발견한다.
처진 눈망울로
타이핑 치고 있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엄마.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나를 통해
젊은 당신을 다시 보고 있는 걸까.
타이핑을 멈추면
잠시 방 안이 조용해진다.
하지만 문장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엄마의 시간과
나의 현재가
같은 화면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글을 옮기며
삶을 기록해 드린다.
당신의 글을 옮기고 있는 나를
바라보시는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눈동자는 촉촉해 보인다.
문득,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