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던 손으로 공간을 살린다...
소개를 받아 도착한 집은
어느 유명한 여배우의 집이었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인테리어.
아쿠아 디 파르마 루체 디 콜로니아의 향이
현관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향을 좋아한다.
직접 조향을 해서 선물할 정도로 향에 익숙한 편이라 문이 열리는 순간 어떤 향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나는 손님처럼 환영받는 기분이 들었다.
의뢰인은
질끈 묶어 올린 꾸미지 않은 머리,
자라 브랜드 스타일의 평범한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 차림이었다.
해처럼 맑은 얼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모습인데—
아, 어디였지.
뇌 속에서 생각이 빠르게 오갔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영화에서 보았던 말투와 표정이
문득 겹쳐졌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아, 그 사람이구나.
내게 이런 하루가 오다니 그저 신기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집을 청소하는 일은
두려우면서도 설렘이 있다.
호기심과 책임감,
서울대병원 간호사로 근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일에도 투철한 직업의식이 뒤따른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정성껏 청소한다.
침대 시트를 벗기고 세탁기와 협업을 한다.
깨끗하게 세탁되고 건조까지 마친
사각 거리는 패브릭의 촉감이
나의 거칠지만 깨끗한 손바닥에 청량감을 전해준다.
시트와 이불커버를 씌워 각을 잡고 나면
나와 의뢰인의 스트레스가 동시에 풀리는 것을 느낀다.
(가끔 눈을 마주치면 웃는다)
소파에 무심하게 널브러진 에르메스 블랑켓을 접고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립스틱 살짝 묻은
컵을 치우고,
바닥의 먼지와 얼룩을 정리하고 나면
일한 보람이 흐르는 땀방울과 마주한다.
이 숭고한 청소와 정리의 시간에는
다른 걱정도, 다른 생각도 들어오지 않는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에게 주어진 네 시간.
이 시간은 일터이자,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시간이다.
과거에는 이 손으로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고,
현재는 누군가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살리고 있다.
미래에는 이 손으로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지금의 나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같은 온도로 살아간다"
특별한 사람의 집 안의 세상은 정말 특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구나.